▲지난 8월 5일 18사단 헌병대에서 ‘윤 일병’ 사건에 대한 피의자 재판이 있었다.
정현환
반걸음. 군사법원의 문을 열자마자 뜨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재판장으로 들어서자마자 맨 아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라봤다. 정확히 반 보(步) 옆으로 고개 숙인 채 묵묵부답인 이 병장을 봤다. 얇은 은색 안경테를 쓰고 있는, 방금 막 자른 듯 한 머리 엉성한 사이로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였다. 턱 밑으로 면도날이 남기고간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자신 보다 5살이나 어린 후임병을 무참히 폭행한 이 병장은 그렇게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의무병이었던 이 병장은 자신의 손에 안티푸라민(소염진통제)을 묻혀 윤 일병의 성기(性器)에 문질렀다. 가혹행위였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의 손을 보며 윤 일병이 느꼈을 고통을 상상해봤다. 바짝 잘린 손가락을 보며 '수치심'에 몸부림 쳤던 윤 일병의 아픔은 쉽사리 그려지지 않았다.
분대원을 보호하기는커녕 가혹행위를 한 병장
세 걸음 하고 반걸음. 이 병장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걸음을 내딛었다. 변호인을 지나 고개 숙인 사나에게 다가섰다. 땅바닥을 응시한 채 미동도 안하는 하아무개 병장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네 걸음을 내딛을 때 누군가가 막아섰다. 가슴에 헌병대 표시가 보였다. 상사를 나타내는 계급도 눈에 들어왔다.
하 병장은 고무링이 풀린 바지를 입고 있었다. 찌든 때가 묻은 하얀색 운동화도 신고 있었다. 신발끈은 바지 틈 사이로 삐져나와 있었다. 하 병장은 자신의 얼굴을 5분의 2이상 덮는 매우 굵은 검정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는 의무분대장이었다. 윤 일병에게 유일하게 '명령'과 '지시'를 내릴 수 있는 병사였다.
그런데 하 병장은 '정당한 지시' 대신 '부당한 지시'를 행했다. 다른 병사들의 가혹행위를 묵인하기도 했다. 나아가 지켜줘야 할 자신의 분대원인 윤 일병을 희롱하고 조롱했다. 그렇게 분대원을 지켜야할 분대장은 없었다. 그래서 윤 일병은 사망할 당시까지 그 어느 누구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갔다. 평소 가장 싫어하는 사람으로 "남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사람"을 꼽았다는 하 병장은 그렇게 윤 일병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다.
병장을 '형님'으로 대우했던 유 하사
이 날 참석한 병사들의 계급장은 모두 다 뜯겨져 있었다. 부직포로 뗐다 붙였다 하는 계급을 붙이는 자리에는 아무런 계급표시가 없었다. 하지만 아닌 사람이 딱 한 명 있었다. 그의 상의에는 꺾인 줄 하나가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이름 세 글자가 박혀 있었다. '하사' 바로 유경수 하사였다.
5분 만에 끝난 재판. 재판관이 일어섰다.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그러다 들어왔다. 이아무개 병장으로부터 여섯 걸음 남짓한 곳에 이번 사건의 유일한 간부인 유아무개 하사가 눈에 들어왔다. 22살인 유 하사는 27살인 이 병장을 '형님'으로 모셨다. 유 하사는 계급이 중시되는 군대에서는 후임이자 병사에게 존칭을 썼다. 나아가 유 하사는 선임병들이 윤 일병에 행하는 구타 및 가혹행위를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다. 오히려 비호하기까지 했다. 수사결과에서 드러난 결과가 그랬다.
재판이 끝나고 헌병들이 팔짱을 끼며 벽을 만들었다. 왜 부사관이 병사에게 '형님'이라고 했는지를 따졌다. 한 줄이었던 벽은 어느새 두줄이 되어있었다. 대답은 없는 유 하사. 재판장을 나가던 사람들이 소리쳤다. 수원에서 오셨다던 아주머니들은 윤 일병을 당신이 살릴 수 있었다고 울먹였다. 나가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봤다. 재판장을 비워달라는 헌병 중위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고개 숙인 가해자들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