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위 출석한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지난 4일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한 한민구 국방부 장관(왼쪽)은 선임병의 폭행과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 모 일병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오른쪽은 권오성 육군참모총장.
남소연
병영 내 가혹 행위와 자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피해 병사는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하고, 총기 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그때마다 응급실에서 응급 처치하듯 부산을 떨지만 시일이 지나면 잊히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귀중한 자식을 잃은 부모들만 애가 타서 몸부림치며 한을 머금고 신음한다. 자식을 강제로 데려갔던 국가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시늉만 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을 외면하고 있다. 국방부가 미몽에서 깨어나야 병영 내 가혹 행위가 근절된다.
여론의 뭇매 때문에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르자, 육군본부 참모총장은 '부대 해체'라는 극약처방까지 내놓았다. 가혹 행위가 발생하는 부대를 모두 해체한다면, 대한민국 모든 부대를 해체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
군대는 전투를 대비해서 훈련하는 곳이다. 강군은 전장이라는 극한 상황에 놓이기 때문에 극기 훈련으로 신체를 단련한다. 이처럼 군대는 특수한 곳이기 때문에 병사들의 정신 교육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병영에는 화기애애한 전우애가 넘치게 해야 한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란 청년들이 강제로 집단 합숙에 들어간다. 이들이 나타내는 반응은, 배고픈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찾을 때 우는 것과 똑같다. 당해 부대의 지휘관이 어머니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서 지휘관에게는 모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군대의 지휘부는 단순한 직장인의 모임이 된 지 오래다. 승진과 보직에 목을 매면서 전역 때까지 적당히 시간을 때우는 것이 일상사이다. 일선의 장교들에게 맡겨진 업무 중에는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관심사병'을 돌보는 것이 있다. 문제는 이 업무가 과중하다는 데 있다. 자녀가 너무 많고 별나기까지 하면 육아는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분담하거나 줄여주어야만 해결된다. 군대에서도 가능할까.
애초 신체검사를 정밀하게 하여 관심 사병이 될 장정들은 입영에서 제외해야 한다. 그러나 국방부가 금과옥조로 여기는 '병력축소불가정책' 때문에 현역복무가 부적합한 인력을 머릿수 채우기식으로 입영시키고 있다. 강군 육성을 위해서는 자원을 엄격하게 선별해야 한다. 국방부가 인해전술 정책을 고집하는 한 병영 사고는 근절될 수가 없다. 장마철 소나기처럼 퍼붓는 사고근절책도 '언 발에 오줌 누기' 처방일 뿐이다.
대한민국 국방부, 타이완으로부터 배워라 대한민국과 같은 분단국가이면서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는 군사력을 가진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던 타이완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병영문화를 근원적으로 해결했다. 타이완 국방부가 대한민국의 국방부와 무엇이 달랐는지 곱씹어보자.
2000년까지 타이완의 인구는 한국 인구의 절반인 2400만 명으로 60만 병력을 유지하던 병영 국가였다. 병사들의 인권 유린 사고가 잦았다. 의문사한 병사들의 부모들은 단체를 결성해서 국방부를 상대로 투쟁했다. 군대 내 자살률이 일반 자살률의 3~5배에 이르면서 병역 의무를 면탈하기 위한 갖가지 비리들도 난무했다. 징병제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피해자들의 원성이 깊어졌지만 연중행사나 통과의례 정도로 여겼다. 작금의 우리 현실과 똑같았다.
그런데 10여년 사이에 타이완 정부는 이러한 병영문화를 말끔히 씻었다. 도깨비 방망이로 요술이라도 부린 것일까.
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구호가 연일 적폐 일소이다 보니 국방부가 변화의 의지를 보이는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원래 국방부는 소나기만 피하자는 심정으로 시간을 끌고 개혁을 흐지부지 만드는 것에 익숙하다. 때문에 국방부 자성의 목소리를 냉소적으로 여기는 국민도 많다. 간담회나 대책위원회 구성은 국방부의 반복되는 단골 레퍼토리다. 누가 신뢰를 하겠는가.
설사 결과물이 나온다 해도 국방부의 주특기가 뒤집기임을 잘 아는 부모들은 입영거부라는 방법으로 저항을 할 태세다. 과거와는 사뭇 달라 보인다. 정녕 국방부가 개선의 의지가 있다면 타이완의 예에서 한 수 배워야 한다. 사고의 전환이 그 해답이다.
중국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국방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국방력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타이완 국방부는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국군정실방안'을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국방부가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정책이다. 주 내용은 사병을 감축하고 직업군인을 확대하고 첨단 무기를 도입하는 것이다. 집권 여당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없어 대개혁을 시동한 것이다. 현 대한민국의 집권 세력은 꿈도 꾸지 않는 정책이다.
수많은 핵을 가진 중국은 '하나의 중국'을 정책으로 내세웠다. 수시로 타이완을 향해 으름장을 놓으면서 일주일이면 타이완을 점령한다고 호언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타이완 국방부가 '국군정실방안' 이라는 정책을 발표한 것을 보면 국격의 차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2000년 1월 타이완 입법부는 국방 정책의 일환인 '병역대체역실시조례'를 통과시켰다. 병력 감축으로 인해 발생한 5만여 명의 잉여 자원에 대해서 '사회복무제'에 해당하는 '체대역'(대체복무의 대만식 표현)을 신설했다. 군복무 대신에 민간의 요소에 필요한 공익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타이완은 현역과 복무면제 판정만 있었는데 '체대역' 도입으로 잉여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처벌을 중지하고 체대역에 편입시킴으로서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고양시켰다. UN인권이사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이 국제인권규약의 위배로서 처벌 관행을 중지하라는 권고를 해왔다. 타이완 정부는 이 권고를 받아들였다. 권고는 강제가 아니어서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대한민국과 대조된다.
타이완은 이 자원을 체대역에 편입시켜 공공부분의 서비스 역무를 부과함으로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분했다. 징역을 살게 하는 것보다 어느 쪽이 더 국가에 득이 되는가는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방부는 징역만을 고집한다. 국방부가 기본적인 인권의식이 없다보니 입영장정들은 끝없이 소금에 절여진 채소마냥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입영한 청년들은 병영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간다. 입영을 거부한 청년들은 범법자라는 올가미로 감옥에 갇혀 심지처럼 타 들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병역법과는 달리 타이완은 신체검사 결과 현역합격자에게도 우리의 사회복무에 해당하는 '체대역'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병영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가혹 행위가 난무하고 성추행과 자살 병사가 늘어나는 작금의 현실을 고려하면 입영 장정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독일 역시 선택의 기회를 주고 있다.
아예 관심 사병이 될 자원에게 사회복무를 선택케 하면 사고 발생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 사회 복무제에 자원을 뺏기지 않으려면 군복무가 더 유리하다는 유인책이 있어야 한다. 경쟁 체제를 도입해야만 최단시일에 병영 문화가 바뀐다. 군복무와 사회복무제 중 어느 한쪽으로 자원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복무 기간의 차별화나 복무의 난이도 등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은 지난 1960년대부터 잉여 자원을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해 온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는 적을 것이다. 타이완은 되는데 대한민국은 안 된다고 하면 너무 자조적인 태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