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골목을 지나 평택 와락센터(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들의 쉼터)를 찾았다. 센터 입구.
참여연대
지난 20일 낯선 사람들과 낯선 골목을 지나 평택 와락센터(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가족들의 쉼터)를 찾았다. 와락,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참 정감가는 이름이다. 조그만 간판과 달리 내부는 널다랗고 깨끗했다. 책장은 책들로 가득 메워 있었고 마룻바닥에는 볕이 훤히 들어왔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센터에는 이미 다른 손님이 와 계셨다.
일산에서 오셨다는 도시농부 부부. 텃밭에서 직접 키운 싱그러운 채소로 손수 반찬을 만들어 오셨다. 농성장에 가면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배를 채우시는 분들이 많아 안타깝다며 매번 이렇게 선물을 하신단다. 올해는 깻잎이랑 고추 농사가 잘됐다고 서글서글하게 웃으신다. 따뜻한 손님을 배웅하고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두 남매의 아빠,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님이 우리 앞에 서셨다.
"쌍용차 사태는 2009년도로 거슬러 올라가요. 탐욕스런 자본의 횡포가 모든 일의 시초였지요." 상하이 차의 만행에 사색이 된 건 정부, 기업, 노동자 할 것 없이 모두 다 똑같았지만, 기업은 책임을 전가하고 정부는 모든 것을 묵인했다. 공권력이라는 잔인한 이름 아래 자행된 폭력에 쌍용차 노동자는 조합을 만들고 목소리를 낼 권리를 박탈당했다. 부당해고와 세상의 외면은 노동자들을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인간의 존엄성은 파괴되었고, 사회에서 박탈당했다는 자괴감에 노동자에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25명이 목숨을 잃었다. 가정이 흔들리고 이혼이 늘어났다. 수많은 가족이 말도 못할 슬픔에 잠겨 울었다.
대한문에서의 대정부투쟁이 끌어온 사회적 관심들, 2012년부터 2년간 지켜낸 분향소에서 보이던 희망의 빛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조리 철거당했다.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입을 연 대선 후보자들과 기자회견까지 열어 대책 마련과 보상을 약속하던 새누리당은 입을 싹 닦고 고개를 돌린 지 이미 오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장례식장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 뿐이었어요. 그게 가장 마음 아파요."우리는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울었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왜 항상 슬픈 일은 일어나야 하는지, 우리는 왜 일어난 후에야 깨닫는 것인지. 미안함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김 사무국장님은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싸움을 하고 있을 노동자의 이야기를 누누이 강조하셨다. 권력의 부패에 터전에서 쫓겨나고 권리를 짓밟히는 사람들이 있다. 와락이 원하는 건 쌍용노조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연대하고, 엮어주는 고리가 되고 싶다 하셨다.
"노동은 가장 존중받아야 할 권리, 청년들이 그걸 알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