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구렁이의 머리 모습. 주둥이는 잘린 모양이며, 파란색의 눈이 제법 크다. 콧구멍은 타원형으로 뚫려 있다. 이마 판은 방패모양이고, 앞이마 판은 다각형으로 바깥쪽이 좁다.
최오균
구렁이는 민가의 돌담이나 방죽, 밭둑의 돌 틈에 서식하며 농가의 퇴비 속에 알을 낳기도 하는데, 퇴비가 발효하면서 생기는 열로 알을 부화 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어릴 때 퇴비더미에서 종종 구렁이를 발견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들은 '구렁이가 나타나면 큰비가 내린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튿날(8월 21일) 그 속담대로 이곳 연천 임진강변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구렁이는 집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믿으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뱀 꿈'을 꾸면 대부분 길몽으로 해석한다. 뱀이 치마 속으로 들어오면 자식을 잉태하게 되며, 구렁이에 물리는 꿈을 꾸고 잉태하면 큰 인물이 될 아이를 낳는 꿈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꿈에서 많은 뱀을 보게 되면 하는 일이 잘 풀리고, 뱀을 만지는 꿈을 꾸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흔히 뱀은 혐오의 대상이나 부정적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구렁이는 재물과 풍요,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예부터 구렁이는 재물을 늘려주는 업(業)으로 여겨왔다. '부잣집 업(業) 나가듯 한다'는 속담은 재물을 늘게 해준 업구렁이가 나간다는 뜻이다. 집안에 구렁이 업이 나가면 망하고, 업이 들어오면 흥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어린 시절 고향의 어르신들이 집에서 발견한 구렁이가 다른 곳으로 나갈까봐 건들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종종 목격하기도 했다.
구렁이는 은혜를 갚을 줄 알고 신통력이 대단한 동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옛날 어린 소년에게 도움을 받았던 구렁이가 소년이 장가가는 길을 따라가서 신랑을 죽이려고 숨어 있던 간부를 찾아내어 신랑을 구출해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구렁이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부부의 윤리를 알고 아내의 부정을 용납하지 않는 동물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어떤 한량이 과거보러 가는 길에 구렁이가 작은 뱀과 교미하는 것을 보고 구렁이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한다. 상처를 입은 암구렁이가 수구렁이와 함께 한량에게 복수를 하려고 왔다가 한량의 말을 듣고, 오히려 정조를 지키지 않는 암구렁이가 수구렁이에게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