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송사
김종길
화장실 딸린 암자의 방 원돈 스님은 해인사에서 3개월 전쯤 이곳의 주지 스님으로 왔다. 예전 이곳 지리산의 백장암, 도솔암, 벽송사에 머물렀다가 해인사를 거쳐 다시 이곳으로 온 것이다.
"할머니가 쓰는 방을 내주세요. 화장실도 딸려 있어 편할 거요."
보살은 스님의 다소 극진한 대접에 조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나대로 이 깊은 산중 암자에 화장실 딸린 방이 있다는 말에 의아했다. 청허당과 마주하고 있는 안국당은 템플 스테이나 절에서 하룻밤 묵어가는 이들을 위한 건물이다.
한옥으로 지은 방에는 실제로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애초에 빈방이 있으면 대충 끼워 자려고 했는데 산중에서 펜션 뺨치는 시설에서 잘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보살이 청소를 하는 동안 절을 둘러보았다.
벽송사는 예전에 두어 번 온 적이 있다. 그때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사세가 제법 커진 것으로 보였다. 전나무 두 그루가 있는 입구 널따란 바위에 서면 벽송사 경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두 그루의 전나무가 벽송사의 중심을 잡아주는 셈이다. 맨 아래 너른 마당을 사이에 두고 청허당과 안국당이 마주하고 있고, 두 벌의 높은 축대를 오르면 '벽송선원' 선방이 가운데에 자리하고 양 옆으로 요사채가 있다.
선방 뒤로 원통전이 있고 그 옆으로 산신각이 있다. 원통전 뒤로는 벽송사의 상징이 된 도인송과 미인송이 있다. 도인송은 꼿꼿한데 비해 미인송은 비스듬히 몸을 눕히고 있다. 제일 뒤쪽 예전 법당 자리로 보이는 곳에 보물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그 옆으로 승탑 세 기가 오순도순 모여 있다. 청허당 뒤 절 입구에는 장승 두 기가 보호각에 둘러싸여 있는데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