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3개, 폐 1.5개...<헤이즐>에 감명받다

등록 2014.08.17 19:29수정 2014.08.17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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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가 내 생일이지만 다음 주는 금요일 비행기를 타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내 생일선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아이들이 미리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냥 함께 있기 였다. 대기업 신입이 되어 마켓팅보고서를 쓰느라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서울의 아이도 내려왔다.


튜브를 타고 파도놀이를 하는 데에도 함께 다녀왔다. 미역국과 전과 잡채를 비롯한 샐러드와 찜을 하느라 큰 아이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애를 썼을 것 같다. 그냥 함께 있기만 해도 고마운데, 10년 넘은 안경도 새것으로 바꿔주고 영화관람도 함께 했다. 

오랫만에 자막이 나오는 외화인 <안녕 헤이즐>을 보았다. 청소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로맨틱영화였다. 나는 아이들의 입모양을 잘못 읽어 로맨틱을 코맨틱으로 잘못 알았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해적>이었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영화는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들이 사랑을 하고 한 편이 죽고 떠나는 것이 기본 설정이었다.

잘못 풀어나가면 자칫 진부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막으로 나오는 대사는 정말 감칠 맛이 나면서도 생의 깊이가 담기고 누구나 공감되며 절로 미소가 나왔다. 그리고 전개 자체도 예측불허의 반전이 자주 나와 몰입도를 깊게 해주었다.

마치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마음과 육신의 아픔에 대한 극한의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교황님의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에게 감동이 되고 위로가 되고, 그래서 새롭게 활력이 생기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소중함에 대해 감사하고 서로 결집하는 사랑의 빛과 힘이 생성되는 것과 비슷하였다.

갑상선암에서 폐암이 되어 산소흡입기를 코에 대고 산소통을 끌고 다녀야만 하는 여주인공은 화장기 없는 얼굴에 살아있는 눈빛으로 아름다운 사랑과 삶에 대한 소중함을 여러 색깔의 별처럼 잘 표현하였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라 해도 함께 하는 우정과 사랑과 그리고 가족의 존재에 대해서 결과보다 그 과정을 통해 마음과 영혼이 치유되는 것을 보여준 영화 <안녕 헤이즐>은 근래에 보기 드문 감칠 맛나는 영화였다.

주인공 헤이즐이 보여준 역할과 표현은10대의 사고에서 나온 삶에 대한 표현이 아니었다. 언제 열릴지 모른는 죽음의 문앞에 항상 서 있기 때문에 경험에서 나온 삶에 대한 성찰이었다.


헤이즐의 엄마와 아빠는 암환자 가족들의 자기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상대를 항상 배려했다. 암환자가 죽고 나서 남는 가족들에 대한 비전제시도 암울하지 않고, 사회에 도움이 되는 희망을 제시하는 것 등 이 영화는 차원이 달랐다.

영화에서 참 재미있었으면서도 인상적인 장면은 실명이 되기 전에 연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친구가 실명이 되자마자 버림을 당하게 되어 수렁에서 헤어나기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친구를 버린 여자친구의 집 앞에서 계란던지기로 '귀여운 복수'를 할 때였다.

암으로 다리가 잘려 두 사람이 합해도 다리가 3개이고, 폐암수술로 폐가 잘려져 두 사람이 합해도 폐가 1.5개이지만...하는 대사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카타르시스와 웃음이 터져나왔다. 절대 코믹할 수 없는 대사인데 코믹했고, 암으로 신체부위가 모자란 것을 말하는 대사인데도 절대 모자라지 않게 당당하게 표현되는 것이 아름다웠다.

영화가 끝날 즈음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다음 주 비행기타는 일정이 갑자기 취소됐다는 것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장난기로 나는 딸에게 다음 주 내 진짜 생일즈음에 다시 미역국을 끓여달라고 할 것이었지만, 단순해서 그런지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폐암에 걸린 엄마를 10년 넘게 오랫동안 간호하는 친구를 문득 찾아가서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 헤이즐 #생일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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