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이 지나간 길의 입구. 바닥에 '진입 금지'가 뚜렷하다. 그러나 순종은 이토 히로부미에 이끌려 이 길을 갔고, 달성공원에서 신사 참배까지 했다.
추연창
공북문은 대구읍성의 북쪽 성문이다. 따라서 공북문 터 역시 현재 북성로 전체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그 공북문 터에 서서 달성공원 쪽으로 바라보면 길이 삼거리로 나눠지는 지점이 보인다. 직진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이 북성로의 연속이고, 오른쪽으로 좁게 난 길은 수창초등학교 정문 앞으로 나아간다.
북성로는 1909년 순종이 지나갔던 길이다. 순종은 이등박문에게 이끌려 달성공원 안에 있는 신사에 참배하러 갔다. 순종은 이 삼거리에서 어느 쪽으로 갔을까? 상식적으로는 넓은 길, 즉 북성로 본길이다.
하지만 순종은 좁은 길로 갔다. '군자대로'라고 했는데 왜 순종은 넓은 길을 놔두고 굳이 좁은 길을 지나갔을까? 그래서 상식이 곧 진실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 성립된다. 당시에는 이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넓게 난 길이 없었다.
삼거리 바닥, 아니 오른쪽으로 난 좁은 길의 바닥에 '진입 금지' 페인트 글씨가 뚜렷하다. 자동차가 교행할 넓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저절로 일방통행 도로가 되었다. 문득 상상력이 발동한다. 순종도 이 길을 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다. 황제가 일제에 저항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더라면 우리가 그리 쉽게 식민지가 되었을까? 순종은 국가의 지도자다운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