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안에 구비된 온수기.
박유진
가장 걱정했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의 청결상태는 기본적으로 기차 번호에 따라 결정된다. 001이 가장 최신 열차이고 기차 숫자가 커질수록 오래된 기차이므로 화장실 상태도 좋지 않다. 첫 열차의 번호는 74번. 모든 기대를 내려놓고 탔지만 의외로 깨끗했다. 화장실 청소는 각 칸에 탄 승무원의 업무이므로 승무원의 성실도(?)에도 많이 좌지우지된다.
칸마다 화장실이 두 개씩 있지만 변기와 세면대가 전부다. 세면대는 수도꼭지를 손바닥으로 아래에서 위로 눌러야 물이 나오는 구조라 많은 양의 물을 한 번에 사용하기 어려웠다. 변기는 물을 내리려 발판을 밟았더니 물이 나오는 대신 빠르게 지나가는 철로가 드러났다. 따라서 역에 정차했을 때는 물론 정차 전후 30분 동안 승무원이 화장실을 잠근다는 사실!
러시아에서 발견한 한국의 컵라면'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이다. 모스크바-이르쿠츠크 구간 열차를 탈 때 4일치의 마실 물과 간식을 준비했다. 어깨가 무너져 내릴 듯한 무게의 배낭을 짊어지고 기차에 탔다. 타자마자 "내가 괜한 짓을 했구나"하고 후회했다. 승무원에게서 간단한 스낵이나 물, 커피를 구매할 수 있었고 식사 때가 되니 빵이나 즉석식품을 파는 승무원도 객실을 오갔다. 그리고 칸마다 온수기가 구비되어 있어 즉석식품을 먹기도 편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도시락'이라는 한국말이 떡하니 적힌 컵라면을 너도 나도 먹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한국에서 수출된 '도시락'이 러시아 최고 인기상품이라 어디서나 구할 수 있었다.
한 번은 기차가 역에 접근하자 사람들이 지갑을 들고 대기하다 내리자마자 어디론가 달리는 것이었다. 그들이 멈춘 곳은 구멍가게 앞. 순식간에 긴 줄이 생겼다. 기차가 장시간 정차할 때 밖에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를 사서 더위를 식히는 것이었다. 정차 시간은 객실 내에 붙어있는 시간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눈치껏 배워 그 다음부터는 LTE의 민족답게 선두대열에 합류했다. 열 손가락을 잘 활용해서 산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바깥바람을 쐬었다. 시베리아의 찬바람에 잠시나마 땀범벅인 몸을 말렸다.
어떤 역은 러시아 할머니들이 먹거리를 바구니에 들고 와 팔기도 하는데 현지의 음식을 구경하기 좋은 기회였다. 바이칼 호수 근처 역에서는 '오믈'이라는 민물고기를 팔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