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31일째, 세월호 희생자 고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이희훈
세월호 침몰이 있던 4월 16일, 아산에서 오전 7시 반에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에 온 9시쯤 유민이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유민이가 제주도 수학여행을 갔는데 배가 침몰하고 난리가 났다는 것이었다. 그는 답답했다. 단원고며, 진도며 상황실에 전화를 했다. 통화중이었다.
그쯤 셋째형에게 전화가 왔다. 전원구조 됐다고 하니 걱정하지 말고 자라고 했다. 애 엄마가 옷 챙겨서 진도로 내려갈 거라고. 11시쯤 잠깐 눈을 붙인 후 12시에 일어나 텔레비전을 켜보니 정말 전원구조라고 써 있다. 그래서 진도로 내려가는 버스에 탄 애 엄마와 통화했다. 그런데 애 엄마는 아침에 29세라고 나온 여자가 다른 방송에서는 24세라고 나오고 왠지 느낌이 안 좋다고 했다.
그래서 구조가 안 된 거 같냐고 물으니, 그런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그쯤에도 그는 불안하면서도 애가 살아 있겠거니 했다. 그러다 방송에 164명 구조라는 글자를 보고 눈앞이 깜깜했다. 부랴부랴 진도에 내려왔다.
가는 길에 먼저 도착한 애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니 "유민이가 생존자 명단에 없어. 실종자명단에 있어" 하며 울었다. 그 얘기를 들으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진도에 도착한 그도 얼마나 울었는지…. 팽목항에서 구조한 배를 기다렸다. 바다를 바라보았지만 안개가 끼어서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배가 한 대씩 올 때마다 달려가 확인하던 나날들. 혹여나 하는 마음에 바다에 대고 유민이를 불렀지만 대답은 없다. 진도 체육관에서 해수부장관 등 높으신 분들에게 항의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다음 날 완전히 바다에 잠겨버린 세월호, 그 안에 애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저기 뛰어들어서 내가 구해줘야 하는데…. 애들이 안에서 엄마 아빠 부르며 울고 있을 텐데…."그래도 그는 속으로 유민이에게 말했다.
"유민아, 아빠 깡다구 있는 거 알지? 너도 깡다구로 꼭 버텨야 한다. 곧 해경이랑 UDT랑 구하러 갈 거니까 조금만 참고 버텨라." 그렇게 이틀, 사흘이 흘렀지만 해경에 구조된 사람은 없었다. 유가족들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봤을 때 일부러 죽기를 기다렸다가 꺼내려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8일 만인 4월 28일, 유민이는 엄마 아빠 품에 돌아왔다. DNA 검사로 유민이임을 확인했다. 바다에서 나온 유민이는 온 몸에 상처 하나 없이 얼굴 살이 쏙 빠져 핼쑥해졌다. 안에서 고생을 많이 했나 싶었다.
배 안은 물로 가득 차지는 않았었나 보다. 배 안에서 며칠간 살아 있었던 건 아닌가, 부검을 해보고 싶었지만 차마 유민이의 몸에 손을 댈 수 없어 참았다. 바다에서 얼마나 추웠을까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 부드러운 유민이의 몸,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가족여행 가려고 펜션까지 빌려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