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지방 항일독립투쟁 유적 답사는 하얼빈 공항에서부터 출발했다.
김민화
일본 제국주의 꿈틀거린 러일전쟁 현장에 가다30여 년간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만주 지역엔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유적이 많았다. 시간의 한계로 다 돌아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 청산리대첩과 봉오동 전투 현장, 윤동주 시인 생가, 백두산, 두만강과 압록강 등등 가는 곳마다 치열했던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일제의 침략과 전쟁, 항일독립운동 그리고 한반도의 분단에 이어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까지. 역사적 논란의 중심에선 만주. 근 100여 년의 한반도 역사를 거슬러 시간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 노선을 취한다. 서구 열강의 위협을 막겠다는 명목으로 일본이 선택한 방법은 아시아 나라들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삼는 것이었다.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다. 일본의 이러한 선택으로 아시아의 여러 나라 위로 불행한 역사의 서막이 드리워졌다.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 지배권을 두고 일본은 두 번의 전쟁을 일으킨다. 바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다. 1895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다. 전쟁 승리의 전리품으로 대만을 할양 받는다. 기세가 오른 일본은 다음으로 만주 진출을 염두에 둔다. 그리고 1904년 일본군은 중국의 요동지방에 주둔한 러시아군을 공격한다. 러일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1년에 걸친 러일전쟁도 일본의 승리로 끝난다. 중국 요동지방에서 러시아를 몰아낸 일본은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게 된다. 이를 기회로 1905년 일본은 조선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는데, 이로써 조선은 사실상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기 시작한다. 이렇듯 러일전쟁은 우리민족에겐 역사의 암흑기를 불러온 결정적 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러일전쟁 중에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203고지'에 갔다. 203고지는 여순에 위치한 언덕이다. 여순은 랴오닝 성 서남부 끝자락에 자리한 아담한 도시다. 우리에게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203고지'는 이 언덕의 높이가 해발 203m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불한 길을 걷다가 숨이 턱에 차 오를 때쯤 어느새 고지 정상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