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파티장타미린도의 해가 완전히 저물면, 해변가에 있는 많은 바에서 어김없이 파티가 시작된다.
김동주
꽤 긴 시간이 지나고 이제그만 가야겠다 싶어서 파티장을 빠져나올 때 에밀이 낮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자기는 바로 앞 호텔에 머무르고 있으니 거기서 자고 가란다.
습하고 북적이는 호스텔에 비하면 에어컨 바람 아래의 호텔 방이 훨씬 편했을 텐데, 왜인지 나는 그의 목소리에서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숙소의 짐 핑계를 대고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 녀석은 갑작스레 나를 돌려 세우고는 덥석 나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불같이 녀석을 밀쳐내고 몇 마디 쏘아붙였더니 녀석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터무니없는 말을 내뱉었다.
"이봐 쥬드. 키스할 때 어차피 눈을 감을 텐데 남자든 여자든 무슨 상관이야? 니가 오늘 하루 종일 먹은 칵테일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우리의 오늘 하루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여행자들 간의 우정이 아니었단 말인가? 나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해변가의 분위기 있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술을 권하고, 함께 파티에 참석한 뒤 호텔 방이라니. 누가 봐도 저급한 치근덕거림이지 않은가. 내가 그가 '게이'일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쳐도 너무나 뻔한 전개다. 게다가 맙소사.
에밀이 나에게 계속 권했던 칵테일의 이름은 '섹스 온더 비치' 였다. 나는 그날 '섹스 온더 비치' 12잔 정도 마셨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내가 느낀 모멸감을 전하고 싶었지만, 그때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동시에 영어로 화를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깨달았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다시피 숙소로 돌아왔지만, 녀석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저 멀리에서도 계속 쫓아왔다.
간신히 잠을 잔 다음 날, 나는 무엇이든 미칠 것이 필요했다. 그 밤의 일이 악몽처럼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던 것이다. 그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타마린도 해변의 수많은 서퍼들이었다.
▲타마린도의 서퍼들파도가 잦고 물결이 높은 타마린도에서는 1년 내내 서핑이 유행이다. 해변에서 진을 치고 있는 서핑보이를 통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강습을 받을 수 있다.
김동주
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더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는 시도로 시작한 서핑은 그렇게 자충수가 되었다.
파도와 싸우느라 있는 힘을 다 써서 탈진 직전에 다시 백사장으로 올라왔더니 핸드폰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순간 단검에 찔린 듯한 아린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사라진 것이다.
꽤 친절하던 서핑보이(코스타리카 해변에서 돈을 받고 서핑을 가르쳐주는 청년들을 이르는 말)는 이곳에는 좀도둑이 많다며 어깨를 '으쓱' 할 뿐이었다. 내 가방은 녀석과 일행들의 많은 짐 사이에 놓여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철저하게 이방인이었고, 이제 내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그날 저녁, 내가 토해냈던 그 수많은 것들을, 내가 기억하고 싶지 않은 단 하나의 순간을 너는 어떤 생각으로 듣고 있었을까. 가끔 떠난 휴가에서 무심코 현관문을 열었는데 파도 치는 바다가 보일 때, 몸을 덮고도 남을 큰 보드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오늘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다. 여전히 아픈 기억일까? 그렇지 않으면 '피식'하고 웃게 될 추억일까.
간략여행정보 |
1년 내내 휴가를 보내러 온 여행객들이 붐비는 태평양 연안의 마을 타마린도(Tamarindo)는 코스타리카 어디에서 출발해도 리베리아(Liberia)라는 도시에서 버스를 갈아 타야 한다. 리베리아에서 타마린도까지는 버스로 두 시간 거리. 타마린도의 거리에는 멋들어진 펍과 레스토랑, 그리고 호텔이 줄지어 있지만 한발자국만 들어서면 펼쳐지는 백사장과 자연을 해치지 않는 모습을 유지한 건물들 덕에 여전히 제 3세계의 신비로움이 남아있다.
해변에는 늦게까지 문을 여는 펍과 카페가 많으며 여행객이 몰리는 주말에는 늘 파티가 열린다. 타마린도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서핑인데, 거리의 서핑숍이나 해변에 수많은 서핑보이를 통해 쉽게 배울 수 있다. 정식 가게보다 서핑보이를 이용하는 것이 저렴하지만 해변에는 언제나 좀도둑이 많다는 것을 명심하자. 주인 없이 짐을 해변가에 두는 것은 금물이다.
그 외에도 시즌에 따라 근교의 폭포나 거북이 관찰, 세일링 등의 투어가 인기다.
좀 더 자세한 타마린도 여행정보는 아래 링크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5028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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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온 더 비치' 건넨 그... 잘못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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