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스> 책 표지
오픈하우스
<4분 33초>의 존 케이지, 책도 파격적 그 자체
전무후무한 침묵의 연주곡 <4분 33초>가 음악으로써 그의 사상을 보여준 작품이라면 이 책 <사일런스>는 음악, 나아가 삶에 대한 그의 철학과 사상이 담긴 저작이다.
실제로 <사일런스>는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예술가와 그 향유자들에게 <4분 33초>와 비견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의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도 존 케이지를 가리켜 '예술적 아버지'로 칭했다.
책은 그가 생전에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과 연설문 등을 담았다. '무용에 관한 네 편의 소고', '무에 관한 강연', '유에 관한 강연', '한 명의 화자를 위한 45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 등이 그것인데 존 케이지가 작곡한 독특한 음악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글에서도 저자의 독특한 성향이 엿보인다.
사실 존 케이지, 나아가 그의 저작 <사일런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때로 그가 전달하고자 한 것은 전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가끔은 우연성과 무의미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곡과 글, 강연까지도 우연적인 작업에 의존하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타로 가득하고 쓸데 없는 내용을 가득 적은, 실수와 우연성으로 가득한 글이 그의 작업을 기록하는 훌륭한 응답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에 그런 식으로 글을 쓴다면 아무리 이해심 많은 독자라도 외면할 것이고, 그 전에 기사 자체가 채택되지도 못할 것이다. 케이지가 해낸 일은 바로 이와 같은 것이었다.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두 강연, '한 명의 화자를 위한 45분'과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또 무엇을 하고 있는가?'는 이런 측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선 '한 명의 화자를 위한 45분'은 한 명의 화자가 45분을 꼬박 다 채워 진행하는 강연을 전제하고 썼다. 이 강연문의 옆에는 10초마다 시간이 기록되어 있고 정확히 45분을 채우고 나서야 글이 마쳐진다. 강연문 사이사이에는 기침을 하고 탁자를 쾅 치고 휘파람을 불고 코를 푸는 등 내용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행동들이 주문돼 있고 때로는 10초에서 20초에 이르는 공백이 주어지기도 한다. 강연의 주제는 온갖 자질구레한 것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는 불확실성과 우연에 대한 것이며 형식 역시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최대한으로 개입시키는 방식으로 되어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