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 표지삶의 정치 그리고 살림살이의 재구성을 향해
이민희
하승우의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은 아나키즘의 시각으로 '풀뿌리 민주주의'를 고찰한 연구서다.
저자는 "풀뿌리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가 부족하고 논의 방식이 협소하다"며 "(풀뿌리 민주주의) 개념의 타당성을 주로 공동체 운동 같은 실증적인 사례 연구를 통해서만 증명하려고 하고, 하나의 이념과 지향으로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의미는 잘 드러나지 않았다"(11쪽)고 지적했다.
참여예산운동, 학교급식, 보육, 주민 참여 조례 제정 운동, 마을 만들기, 협동조합 운동, 정보 공개와 주민 참여 운동 등 다양한 풀뿌리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반면, 이러한 운동의 경험을 비교 분석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은 취약하다. 저자는 이를 '이론과 경험의 불균형'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아나키즘'이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다지는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고 본다.
흔히 무정부주의로 지칭되는 아나키즘은 사실 그렇게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본래 아나키즘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사회, 즉 '자유로운 코뮌'을 지향한다.
권력을 교체하는 '정치 혁명'보다는 생산과 소비의 일상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사회 혁명'에 주안점을 두며 역사와 교육을 중요시한다. 하나의 '완성된 대안'을 거부하는 아나키즘의 속성 상 완벽한 이론적 틀을 만드는데는 관심이 없다. 혁명 전략보다는 혁명 실천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때문에 인간의 자율성과 자아 실현, 스스로 필요한 것을 충족하며 서로 보살피는 자유로운 코뮌이 더 나은 삶이라고 믿는 모든 생각은 아나키즘에 강한 친화성을 갖는다.
저자는 아나키즘의 문제의식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마주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지점을 제시한다고 본다. 아나키즘이 제시하는 '자유로운 코뮌'과 코뮌들의 연합을 통한 '연방주의'의 실현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시하지 못한 사회상을 구체화하는데 단초를 제공한다.
특히 연방주의 구상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작은 규모의 공동체를 바꾸는 시도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넘어서고, 공동체가 폐쇄적으로 변하는 것도 방지하며 전체적인 사회 변혁의 전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생활 영역의 변화는 작은 변화로 제한당하는 현실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나키즘은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에 이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정치 질서와 경제 질서의 재구성이라는 화두를 던진다.
협동조합, '연방주의'와 '협동운동'의 교집합저자는 풀뿌리 민주주의와 아나키즘의 합주가 한국적 현실에서 서로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내다본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지역화되면서 대안적인 이념의 성격을 잃어가는 현실을 다잡고 다시 근본적인 사회 변화의 대안으로 자신을 제안할 수 있는 기회이고, 아나키즘은 대중운동을 만날 접촉면을 잃은 채 담론으로만 논의되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273쪽)라는 것이다. 그는 양자의 합주를 통해 '연방주의'와 살림살이를 위한 '협동 운동'을 대안 전략으로 제시한다.
연방주의는 작은 공동체들의 연방, 분권의 실현과 지역 자율성 확보, 지역들 사이의 네크워크 구성, 궁극적으로 국제적인 네트워크의 건설을 목표로 한다. 협동운동은 자립을 위한 사회운동이다. 협동 운동은 승자독식의 자본주의와 정치 경제가 유착되고 중앙집권화 된 국가구조를 변화하시킬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다. 연방주의와 협동운동은 풀뿌리의 각성과 결집을 통해 가능하다. 결국 중요한 문제는 얼마나 많은 주민들이 각성하고 자각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 참여 과정을 통해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풀뿌리 운동은 다양한 주체들이 얽히는 과정이다. 풀뿌리 운동은 주거나 교육, 먹거리 같은 생활상의 이슈를 정치적인 의제로 다루는 것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풀뿌리 운동은 기성 정치가 끊어놓은 사회적 관계망을 복원하고, 내가 '많은 타자속의 나', '사회적 관계속의 개인', '사회적 개인'이라는 점을 자각하는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풀뿌리 운동은 경쟁과 생존 투쟁을 극복하고 공생과 자율의 삶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자, 내 삶의 경험이나 의식하고 분리되지 않은 정치구조를 만드는 행위이며, 삶 자체를 정치적으로 재구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풀뿌리 운동은 개인이 사회라는 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이며, 그래서 서로 돕고 보살피는 호혜의 관계가 사회를 발전시키는 힘이라는 점을 강조한다.(53쪽)개념적 정의로 본다면 풀뿌리를 단순히 지역적 공간으로 제약할 수는 없겠지만, 풀뿌리의 현장이 자신의 '삶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지역적 차원의 운동으로 전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자는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지역사회가 강화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라며 "마을 공동체,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들이 지역사회를 강화시킬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대안으로 소개되는 곳들도 지역사회 전체의 실제 역량을 따져보면 내실이 부족하다"고 진단한다.
협동운동은 정체성 상실과 경제주의적 편향을 드러내며 시장에 동화되거나 흡수되는 결과를 초래했고, 지역 풀뿌리 운동은 주체의 불안정에 시달리고 주민들에게서 고립되면서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287쪽)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에 비춰본다면 오늘날 '협동조합'이야 말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현장 교과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협동조합만이 유일한 해법은 아닐지언정, 지역사회에서 자치와 자급을 실현할 거점으로서 가장 유력한 대안임은 부인할 수 없다.
경제조직이면서 정치조직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협동조합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 삶터와 일터의 분리라는 왜곡된 구조를 바로 잡고 마을 단위에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갈 거점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거대 공룡에 맞서 협동조합들의 협동, 공동체들의 연대와 협력은 연방주의를 현실적으로 구현해나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풀뿌리민주주의와 아나키즘 - 삶의 정치 그리고 살림살이의 재구성을 향해
하승우 지음,
이매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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