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응급실에서 빼낸 치킨 뼈의 모습생명에 위협을 가한 치킨 뼈. 혼자 몰래 먹으려다 그만.
A양 제공
이 정도 겪었으면 치킨이 좀 싫어질 법도 하다고? 천만의 말씀. 풋풋한 대학생 새내기가 되어서는 나의 치욕(치킨에 대한 욕망)이 정점을 찍는다. 동네 치킨에서 벗어나, 캠퍼스 번화가 치느님을 처음 영접한 나. 나에게 그 맛은 그야말로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학내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면서 학교에서 밤새는 일이 잦아졌고, 야식은 대부분 치킨이었다. 어쩌다보니 저녁밥과 야식 모두 치킨 연속 2단 콤보로 때울 때도 많았다. 프라이드, 양념, 간장, 카레, 파닭 등 종류야 많았으니 아무래도 질리진 않았다.
그보다 더 먹은 날도 있었고 덜 먹은 날도 있었지만,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세 마리씩 먹었다(그나마 좀 줄여서 계산한 거다)고 가정할 때, 기자 활동을 한 2년 6개월 동안 내가 먹어 치운 치킨의 수는 무려 360여 마리에 이른다. 심지어 신문사를 그만두고 나와서도 종종 새벽에 좀비처럼 일어나 "엄마, 왠지 치킨을 먹어야 할 것 같아"라고 말해서 한동안 엄마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22살 한때는 잠시 치킨을 멀리하며, 소개팅의 여왕(현실은 소개팅 기계)으로 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도 두 번의 소개팅이 같은 날 점심, 저녁으로 잡혀버린 적이 있었다. 무슨 소개팅 공식도 아니고, 그날도 어김없이 점심은 느끼한 크림 파스타를 먹고 바로 저녁 소개팅 자리로 이동했다. 꽤 괜찮은 편이었던 저녁 소개팅남이 처음 던진 말.
"파스타 어때요? 이 근처에 괜찮은 곳 아는데." 평소 같으면 '얼씨구나! 땡큐!' 했을 그 젠틀한 제안이 그날따라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또 다시 그 느끼한 크림으로 위를 도배하기는 끔찍하게 싫었다. 뭔가 매콤한 음식이 땡겼고, 갑자기 숨겨왔던 치욕이 되살아나며 양념치킨이 절실해졌다.
머뭇머뭇거리다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치킨을 먹자고 제안했다. 시끌벅적한 호프집에서 치킨은 맛있게 먹었지만 당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마치 TV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을 연상시키는 그 정신없는 분위기에서 "네? 네?"만 연발할 뿐. 그렇게 나는 치킨 때문에 괜찮은 남자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끼리끼리 논다고, 절친 A양(그녀의 혼삿길을 막지 않기 위해 익명으로 처리함)에게도 치킨에 대한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그날은 3월의 편안한 공휴일 저녁. 그녀의 언니와 함께 다정하게 치킨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하필 언니가 샤워하는 틈에 치킨이 배달 돼버렸고, 그녀는 끓어오르는 치욕을 주체 못해 언니 몰래 치킨에 먼저 손을 댔다.
벌을 받을 것일까. 그녀는 맛있게 먹던 중 치킨 뼈가 목에 걸려버렸고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공휴일이라 근처 병원은 모두 문을 닫은 상태여서, 급히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실려갔다. 내시경을 거쳐 그녀는 간신히 목에 있는 치킨 뼈를 제거할 수 있었고, 그야말로 죽다 살아났다. 그 후 그녀는 치킨을 무서워해 다시는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는 건 거짓말. 어제도 나랑 맛있게 한 마리 해치웠다.
"치타쿠의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윤허해주소서, 치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