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7월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새누리당 전남도당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된 뒤 조충훈 순천시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오랫동안 지역에서 지역민들과 동고동락하여 지역을 잘 아는 후보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지역일꾼론으로 포장되어 타지역 출신을 배제하는 제2의 지역주의로 진화(?)하고 있는 현 상황은 우려스럽다.
국회의원은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다.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을 별도의 조항으로 하여 기능과 역할, 권리와 의무 등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교과서에 나오는 국회의 중요 기능(권한)은 입법권, 조세권(재정권), 예산심의권, 국정통제감시권 등이다. 쉽게 말해 국민을 대표하여 법을 만들고, 세금을 결정하며, 예산을 심의하고, 나아가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우습게도 국회의원들이 지역개발을 우선공약으로 내건다. 그래서 공약만 보면 이게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인지,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인지 구분이 안 된다. 공약이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이를 지역일꾼, 지역개발로 포장한다.
예산심의권이나 국정통제권의 일부가 지역개발과 연관될 수는 있지만, 오히려 헌법 제64조는 국회의원이 지위를 남용하여 자신이나 타인이 계약, 처분에 의하여 권리·이익, 직위를 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예산 심의 때 자기 지역구 예산을 챙기는 관행을 '쪽지 예산'이라고 비판해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크게 화제를 몰고 온 인물은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다. 그는 민주화 이후 최초의 보수정당 출신 전남 지역구 의원이 되었다. 우리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의 공약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그는 '예산 폭탄으로 지역발전을 10년 이상 앞당기겠다', '국회사무실에 호남예산 지원 전초기지를 만들어 호남지역의 예산 담당 공무원들이 사용하도록 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가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므로 중앙정부 예산을 순천곡성에 끌어와서 지역 개발에 쓰겠다는 것이다. 순천곡성 유권자들은 여기에 화답했다. 새누리당은 정말로 이정현 의원을 지역개발과 예산 관련 상임위원회인 예결위원회와 산업자원위원회에 배치했다.
이건 정치권력 사유화의 나쁜 선례가 될 것이다. '차라리 박지만(박근혜 대통령 동생)을 후보로 내서 누나한테 예산 타오게 하라'는 조롱이 나오는 이유이다. 지난 이명박 정권 당시 '모든 것은 형(이상득 전 의원)에게 통한다'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조롱이 유행했던 이유도 이런 것이다. 지역주의, 정실주의의 상징인 '우리가 남이가?'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외피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지역주의 욕망을 넘어 국회의원의 헌법적 권한 생각해야권력자와의 친소(親疎)에 의해서 국가사업이 결정되고 국민의 혈세가 배당되는 이런 행태는 민주주의에서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하는 적폐(積幣)다. 지역일꾼론, 지역개발론이라는 포장으로 미화해서는 안 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지역을 잘 챙기는 정치인'이란 말이 지역 행사에 잘 참여하고 중앙정부 예산 잘 따오는 국회의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극단적으로, 국회 본회의와 지역구 체육대회가 있을 때 국회가 아닌 지역구 행사에 참가하는 것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 지역일꾼, 지역구 국회의원의 상이 맞나? 이런 지역일꾼이라는 의미가 어디서 태어났느냐, 어느 학교를 다녔느냐, 어디서 살고 있느냐 하는 연고지 개념과 결합되어 사용되는 한 결코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국회의원 선거는 '지역일꾼'을 뽑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대표하여 법을 만들고 나라 일을 할 '나라일꾼'을 뽑는 것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나 지방의원 선거와 구분되어야 한다. 국회의원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누가 우리 지역에 대기업 공장을 유치할 수 있고, 어떤 후보가 중앙정부 예산을 더 많이 받아낼 수 있는가(중앙권력과 누가 더 가까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이슈인 '세월호 특별법 관련 입장이 무엇인가', '쌀시장 개방에 따른 관세화를 어떻게 보는가', '4대강 사업에 쓰인 국가 예산을 어떻게 보는가', '쌍용차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국가보안법 문제, 남북통일 문제에 대한 비전은 무엇인가' 등 국가정책에 대한 입장과, 나아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하는 국제정책에 대한 입장이 국회의원 선거의 판단 근거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우리 국회의원 선거에는 이런 것이 없고, 있어도 쟁점이 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해야 하는 일이 자기 고장으로 돈(중앙정부 예산) 끌어오는 것이라는 생각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이 말처럼 정말로 국회의원이 전부 지역발전, 예산 가져오기에 몰두하면 어떻게 될까? 국회는 아비규환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국민의 대변자가 아니라 중앙권력의 하수인으로 완전히 전락한 국회를 보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동작의 외손자', '3대째 김포 토박이', '400km 철새' 등의 말에 나타난 변종지역주의, '예산폭탄', '강남4구' 등의 금전적 욕망을 자극하는 정치로는 이 나라가 한 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이 권한과 의무를 여야가 함께 돌아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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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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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박지만 뽑아 누나에게 예산 타오라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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