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인슬류댠카를 출발해 포트바이칼로 향하는 환바이칼 열차에서 만난 세 명의 여인. 왼쪽부터 긴가, 파올라, 에바.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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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칼 호수 곁을 달리는 환바이칼 열차 환바이칼 열차는 크게 두 종류다. 하나는 관광열차, 다른 하나는 지역열차. 내가 탄 지역열차는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커다란 장점이 있다. ⓒ 정대희
바이칼 호수에 취해, 정겨운 풍경에 넋을 놓고 그렇게 한참을 객차 안에서 눈 구경 삼매경에 빠졌다. 그 순간, 맞은편 좌석에 앉아있던 한 여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How are you(하우 아 유)!"영어다. 객차 안에 나를 제외하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세 명의 여자 중 한 명이다. 그의 말에 짧게 영어를 동원해 되받아치자 곁에 와 앉으며, 말을 건다. 서툰 영어 실력에 긴장이 된다. 침을 한 번 꿀꺽 들이키며, 마음을 다스려 본다.
"어디서 왔니?""한국. 북한이 아니고 남한.""그렇구나. 혼자서 여행하는 거니?""응, 포트바이칼에 갔다가 리스트비얀카, 그리고 알혼 섬으로 갈 거야.""오! 우리와 여정이 같구나. 저쪽에 보이는 두 명(여자)이 네 친구들이야.""그렇구나.""괜찮으면, 우리랑 같이 여행할래? 우리도 알혼 섬까지 가는 중이거든.""...좋아!"뭔가에 홀린 듯, 얼떨결에 동행을 승낙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라 정신이 없었지만 어느 틈엔가 그녀의 친구들과 통성명을 나누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마도 여행자란 공통점이 거부감과 경계심을 느슨하게 만든 듯하다. 아무튼 그렇게 갑작스레 인연이 닿은 세 명의 여인과 예기치 않게 동행을 하게 됐다.
사실 세 사람이 친구 사이라 말했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처음 그녀들을 보곤 모녀가 여행 중이라고 생각했다. 내게 먼저 말을 건 그녀가 두 딸의 엄마인 줄 알았다. 오해할 만한 상황도 있었다. 거리상 대화를 다 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꾸짖음에 둘 중 키 큰 여자애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영락없이 엄마에게 혼나는 딸 같았다.
어쨌든 동행이 생기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무엇보다 러시아어를 아주 능숙하게 하는 긴가(Ginga)가 있어 안심이 됐다. 그녀는 엄마처럼 보이던 에바(Eva)에게 혼이 나던 폴란드인이다. 에바는 스페인에서 러시아로 유학을 온 학생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에바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서 유학 온 파올라(Paula)란 이름의 키가 작은 아가씨다. 셋은 모두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단다.
오후 6시 50분,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그때야 비로소 포트바이칼에 도착했다. 장장 5시간 30분이 걸렸다. 구글 맵으로 검색을 해보니 슬류댠카역에서 포트바이칼까지 거리가 약 '85km'라고 표시됐다. 한 시간에 약 15.5km씩 이동한 거다. 순간, 기차가 굼벵이 한 마리로 보였다. 정말, 환상적인 모습의 바이칼 호수와 그 곁에 어우러진 소박한 동네의 풍경이 없었다면, 두 번 다시는 타고 싶지 않은 기차다.
얼음 위를 달리는 보트를 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