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주)빅스톤픽쳐스
[기사 보강] 4일 오전 10시 34분최민식, 그가 돌아왔다. 신화가 된 영웅과 인간 사이를 조율하느라 촬영 도중 졸도하기 까지 했다는 국민배우가 <명량>으로 우리를 찾아온 것이다. 그를 맞이할 개선문은 어느새 흥행의 문으로 급변신중이다.
<신의 한 수>로 시작해 <군도: 민란의 시대>를 거쳐, 새롭게 국민을 사로잡을 영화에 관한 소문은 연일 최다관객 기록 경신이라는 속보성 기사를 흘려보내는 중이다. 최종 관객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 페이스대로라면 천만 고지 등극이 꿈만은 아닐 것이다. 61분간의 해상전투씬 만으로도 관객을 사로잡기에는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시장 자체가 협소한데도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그 자체가 기록인 것이다.
<활>로 우리에게 친숙한 김한민 감독은 멘탈에서 이미 상남자임을 증명한다. 한류라는 원군이 있기는 하지만 특정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외국에서도 통할지는 미지수인데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할 수 있는 <명량>을 기어이 완성했다는 것에 모든 걸 떠나서 일단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이 영화가 과연 일본에서 상영 가능한가를 생각해보면 쉽게 수긍할 것이다. 호불호의 평가는 엇갈리고 평론가들은 비교적 냉정한 멘트를 날리지만 재미있다는 관객의 반응은 굴곡이 없다. 다수의 선택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일관된 평가는 거역할 수 없다는 대세에 한 표를 던진다. 실제로 재미있다! 뚝심이 이루어낸 결과다.
알다시피 영화는 역사가 아니다. 제한된 시간에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은 거대한 사건을 압축 요약한다고 해서 보여주기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61분간의 해상전투신으로 '이야기'의 공백을 얼버무렸다는 식의 지적은 과감한 연출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어차피 향기와 열매를 모두 가질 수는 없는 법.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면 과연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관객은 엄연히 대한민국의 국민이지만 당시의 아픔을 공감하되 절감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폭염주의보를 조심하라는 재난문자가 유통되는 이 '핫'한 시대에 적어도 생존이라는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일상의 전투에 지친 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지는 않을까? 역사라는 거울을 통해 비춰 본, 당대의 보다 더 큰 아픔이 주는 학습효과가 지금 우리의 현실과 현재를 건강하게 만들지 않는가? 거기서 문득 긍정의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마치 와류가 일어나는 울돌목의 힘찬 물살처럼. 관객이 열광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신을 미끼로 욱일승천하는 과도한 자신감에 사로잡힌 적군을 유인해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은 비장하다 못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은 그 순간 그를 따르던 부하들의 관망이다. 모두 득도한 것 같은 표정으로 멀찍이서 상관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는 수군들, 대체 그들의 머리에는 무엇이 자리한 걸까? 하지만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것인가는 배설이라는 부하의 암살시도를 보면 수긍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