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웃으며 떠납니다'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3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마친 후 국회를 나서며 차량에 올라 취재진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7월 31일 오후 4시, 기자회견을 약속한 시각. 회견 장소인 국회 본청 앞에 도착했지만 손학규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차 문을 열지 않았다. 3분여 간 미동도 않던 그는 눈가를 훔친 뒤 차 문을 열고 나섰다. 1993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발을 들인 뒤 21년 간 쌓아온 정치 역정을 마무리하러 가는 길이다.
2012년 6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나는 정말 대통령이 되고 싶다,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다"라고 밝혔던 그는 2년여 뒤인 이날 "떳떳하게 일하고 당당하게 누리는 대한민국을 만들려 했던 나의 꿈을 이제 접는다, 능력도 안 되면서 짊어지고 가려했던 짐들을 이제 내려 놓는다"라고 담담히 밝혔다. 하루 전 치러진 수원병 재보궐선거에 출마했으나 패배한 손 상임고문은 "지금은 내가 물러나는 것이 순리"라고 말했다.
20여 년간 정치인으로 살아온 손 상임고문은 "오늘 이 시간부터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성실하게 살아가겠다"라고 말하며 정치인으로서 마침표를 찍었다.
"한나라당 탈당 후 시베리아 땅으로... 순탄치 않았지만 보람 있었다"손 상임고문의 정치 역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민주당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냈지만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는 내내 그를 따라다녔다.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를 시작하며 민주자유당(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 입당한 것이 그에게는 부정적인 꼬리표로 작용했다.
그는 민자당 입당 직후 14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15대 총선에서 재선한 그는 1996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소속 3선 의원이 됐고, 2002년 민선 3기 경기도지사가 됐다.
그랬던 그는 2007년 돌연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빅 3'로 꼽혔던 그는 "한국정치의 낡은 틀을 깨뜨리기 위해 저 자신을 깨뜨리며 광야로 나선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라며 "한때의 돌팔매를 피하려고 역사의 죄인이 되는 길을 택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의 선택을 두고, 한나라당 내에서는 대선후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한 그가 정치 생명을 걸고 탈당한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이후 대통합민주신당(새정치민주연합 전신) 창당 과정에 역할을 했고,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 대표를 두 차례 역임했음에도 그에게 새겨진 주홍글씨는 쉬이 지워지지 않았다.
손 상임고문을 따라다니던 꼬리표가 희미해진 건 불과 몇 년 전 일이다. 2012년 7월 고 김근태 의장을 따르는 당 내 모임인 '민평련'이 주최한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 그는 "5년 전 한나라당에서 탈당했다"며 자신의 주홍글씨를 언급했다.
그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를 억지로 벗으려 할 것도 없다"라며 "다만 내가 젊어서부터 추구했던 민주주의의 가치, 사회적 약자, 남북 분단으로 인한 비극을 치유하는 것에 몸을 던지는 것으로, 김근태 의장이 '학규 좋은 사람이긴 한데…'라면서 뒷말을 잇지는 못하고 돌아가신 데 대한 죗값을 치르겠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주홍글씨를 언급하며 '죗값을 치르겠다'는 그에게 민평련은 대선 후보 지지투표에서 손 상임고문을 1위로 뽑는 것으로 답했다.
"제 이야기도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