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삼도수군 통제영의 중심 세병관
김영동
초등학생 시절, 한 친구가 세병관에서 조선시대 보물지도를 발견했다며 같이 다니던 우리 무리를 비밀스럽게 불러 모았다. 세병관 돌 기단 어느 곳에 감춰진 지도를 얼마 전 찾아서 집에 보관하고 있다고 녀석은 조심스레 말했다. 원본은 분실될 염려가 있다며 16절지에 볼펜으로 보물이 숨겨진 장소를 그려와서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세병관은 통영의 제일 중요한 랜드마크이다. '통영'이라는 이름의 유래인 삼도수군 통제영(조선시대 해군본부)의 중심 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통제영을 중심으로 마을이 구획되었고 민초들은 삶에 살을 붙여갔다. 통영은 군사 도시로 출발했다.
나는 세병관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둔 통영초등학교를 다녔다. 선생님들은 세병관이 중요한 문화재이니 함부로 담을 넘거나 하지 말라고 하셨다. 당시엔 보물 몇 호였는데 십여 년 전 국보로 승격 지정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흙투성이 우리들에게 세병관은 학교랑 늘 붙어있는 큰 기와지붕의 건물일 뿐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나 축구를 하다가 공이 담장을 넘으면 그곳에 가서 주워 오는 게 우리들 '답사'의 목적이었다.
보물지도를 손에 넣은 그 녀석도 공을 찾기 위해 갔다가 의외의 횡재를 했다며 들떠있었다. 우리는 보물지도가 많이 미심쩍긴 했다. 하지만, 통영이 과거에 군사기지였으니 군대를 위해 비상시에 사용하려고 돈, 무기 등 중요한 물건들을 몰래 숨겨두지 않았겠냐고 우리를 설득했다. 그러면서, 군사기밀이라 지금껏 아무도 몰랐을 테니 우리가 찾아 나서보자고 호기롭게 제안했다.
그러자 옆에서 코딱지를 파던 다른 녀석이 자기 아빠가 얼마 전 땅을 파다가 엽전을 한 무더기 발견했다고 자랑했다. 자기가 사는 태평동 주전골은 조선시대 때 엽전을 만드는 주전소가 있던 곳이어서 그런 일이 가끔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지도 속 장소에도 진짜 뭔가가 있을지 모른다며 보물찾기를 한 번 해보자고 거들었다.
책가방이 무거워지고 6년째 같은 학교 언덕을 오르내리는 게 지겨워지지 않았다면 이 무모한 일을 시작하진 않았을 것이다. 세상엔 참 다양한 학원이 있다는 걸 체득하며 일요일을 잃어가던 우리들은 공부의 공습을 피해 방공호를 찾듯 보물찾기에 나섰다.
지도는 통영의 여기저기를 향하게 했다. 남망산이나 미륵산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곳도 있었지만 달아, 소매물도처럼 가 본 적 없는 곳도 있었다. 이런 곳들은 모두 한 걸음 마다 멈춰 서서 두 번씩 감탄을 내뱉게 했다.
하지만 대충 그려진 그 지도 종이쪼가리로 몇 주째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것을 찾는 데 지쳐갔다. 점점 이탈병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보물찾기를 진두지휘하던 그 녀석이 홀연 다른 도시로 전학을 가버리면서 우리의 모험은 허무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