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는저녁 7시 반, 세미나실로 향합니당
The Johnnie Chair
그렇게 세 번째 문제는 해결을 했는데 두 번째와 첫 번째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은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됐다. 이 문제들에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인데, 바로 '너도 나도 뭔 말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즉, 심지어 영어가 안 돼서 리딩을 다 못하고 온 영희도, 다 읽어 갈 수는 있지만 자신이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한 자신감이 없는 철수도, 영어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책 자체가 어려워 이해를 못하는 피터도, 심지어 영어도 문제 없고 똑똑해서 자기가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수업에 온 다니엘까지도, 모두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수업에 온다는 것이 바로 공통점이었다. 웃기지만 얼마나 다행인 공통점인가!
이렇게 모두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모인 수업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 같이 알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책을 읽었는데 "아, 모르겠어"하고 끝내면 정말로 끝이다.
하지만 내가 책을 읽었는데 (언어의 문제 때문이든, 책 내용이 어려워서든) 그것에 대해 잘 모르겠고 자신이 없으면 어떤 부분이 이해가 안 되는지, 어떤 부분에서 자신이 없는지 체크를 해놓을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수업에 가서 "이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하며 다른 친구들에게 설명을 부탁할 수도 있고, "이 부분이 이렇다는 거야?"하고 내 의견을 확인해 볼 수도 있다. 만약 내가 잘못 읽은 거라면 다른 이들의 의견과 조언을 듣고 받아들이면 되고, 그저 의견차이일 뿐이라면 그걸 가지고 토론하면 된다.
따라서 '모르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모든 수업의 핵심이었고 이게 바로 전 기사(관련 기사 :
유학 후 첫 영어토론수업 '멘붕'... 이렇게 극복했다)에서도 말했던, 영어를 배우는 데 가장 핵심적인 능력이라고 생각되는 "포기하지 않고 소통하는 법"과도 관계가 있는 소통의 태도다.
포기하지 않고 소통하려는 욕심이 있어야만 내가 모르는 걸 알려고 하는 집요한 태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내가 한국말 책을 먼저 읽는 잔머리를 굴렸던 것도 사실 이 핵심을 위해서였다. 아예 언어가 안 돼서 내가 모르는 게 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되면 답이 없고 아무도 도움을 줄 수가 없지만 그 단계만 벗어나면, 배움을 얻는 토론이 시작될 수 있다.
이게 사실은 별거 없는 나의 영어 고전 원서 공부법이다. 이런 식으로 4년을 하다 보니 조금은 철학책들의 문투에 익숙해 질 수 있었다. 예전에는 무조건 "으헉, 이게 뭔말이래!"하고 겁부터 먹었다면 지금은 "이게 이렇다는 건가? 랄랄라~"하면서 마음대로 착각한 내 해석을 내놓는다. 그렇게 내놓은 해석을 가지고 수업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해 보면 어쩔 때는 그 해석이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또는 내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고 내 맘대로 해석한 이유로 틀리기도 한다.
그렇게 틀렸다는 것이 발견되면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그런데 또 어쩔 때는 나의 (원어민보다 떨어지는) 영어 실력 덕분에 내가 그 친구들보다 더 주의 깊게 읽어서 내 해석이 더 정확하기도 하는 그런 즐거운 일이 벌어질 때도 있었다.
4년간 영어 고전을 읽으면 고전 원서 읽기가 껌 같아야 할 것 아닌가?하고 의아하실 수도 있는데 솔직히 난 지금도 철학 원서를 읽으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열정의 폭죽을 터뜨리며 '오로지 영어로만!'을 고집한 그런 친구들처럼 공부했다면 학교를 졸업한 지금쯤엔 영어 고전 읽기가 껌 같을까? 그 또한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내 맞춤형 고전 공부 방법이 마음에 든다.
배울 것이 너무나 많은 매 수업을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흘려 보내고 싶지 않았고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결국 영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이렇게 여전히 어려운 영어와 고전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내 스타일대로 찾아나간 고전 영어 공부법에 관한 더 자세한 일화는 다음 기사에서 토론 시간에 친구들의 말을 알아 듣고(리스닝), 내 의견을 말하고(스피킹), 페이퍼를 써내기(롸이팅)까지의 과정과 함께 계속 됩니다. 기대해주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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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고전 읽기, 피할 수 없다면 잔머리를 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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