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베트남땅이 된 캄푸치아 크롬을 캄보디아에 돌려달라고 시위하는 승려들
박정연
'캄보디아 아랫지역'라는 뜻의 '캄푸치아 크롬'은 지금은 베트남 남부 땅이다. 이 지역은 과거 '사이공'으로 불리던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 '호치민시'를 둘러싼 6만8990평방킬로미터 크기의 땅이다. 아주 오래 전에는 캄보디아인들이 주로 정착해서 살던 땅이었으며, 지금도 약 100만 명(1999년 통계 기준)이 넘는 크메르 자손들이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고 있다. 이 지역에 베트남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무렵부터다. 1662년 캄보디아 국왕이 전쟁 중 흘러들어온 베트남인들의 일부 거주를 허용해 베트남인들의 정착이 본격화되었다. 18세기 무렵 태국의 침략으로 캄보디아 국력이 약해지자, 베트남 응우옌 왕조가 본격적으로 통치를 시작하면서 캄보디아의 영토 지배력은 극도로 약해졌다.
1862년과 1873년 맺어진 1~2차 사이공조약을 통해 프랑스는 캄푸치아 크롬을 '코친차이나'로 개명하고, 베트남 북부의 통킹 보호령과 중부의 안남 보호령과 함께 프랑스령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그런 가운데 지난 1949년 6월 4일 프랑스정부가 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제네바 협정에 따라 이 지역을 캄보디아가 아닌 베트남 영토로 확정지으면서 국제적으로 베트남 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던 시절 프랑스는 이런 양국 국민들의 정서를 교묘히 이용해서 캄보디아인 대신 베트남인들을 관료로 고용함으로써 캄보디아인들의 반베트남 정서에 불을 붙였다. 지난 1979년에는 베트남군이 캄보디아 인민들을 압제에서 해방시킨다는 미명 아래 크메르루주를 괴멸시키고, 캄보디아를 점령, 훈센 등을 앞세워 베트남 괴뢰정부를 세운 적이 있다. 베트남은 당시 20만 대군을 상주시켜 이후 10년 동안 캄보디아를 지배했다. 최근의 반베트남 정서는 여기서부터 본격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 여행책자 한 권, 캄보디아를 들끓게 하다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캄푸치아 크롬이 베트남 영토로 확정된 지 65주년이 되던 지난 6월 4일, 캄푸치아 크롬 출신 승려들과 민간인, 연합회 회원, 그리고 인권단체들이 모여 베트남 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시위집회 다음날, 베트남 대사관 대변인은 현지 라디오 방송국에 출연해, "캄푸치아 크롬은 프랑스가 1949년 베트남 영토로 구획을 확정하기 이전부터 이미 베트남 영토"였다고 주장했다.
이 소식을 듣게 된 캄보디아 국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캄푸치아 크롬 출신 주민들과 연합회, 인권단체들이 즉각 규탄성명을 냈다. 지난 7월 21일에는 학생, 승려들까지 가세한 가운데 이 협회 회원 수백여 명이 수도 프놈펜에서 두 번째 가두시위를 벌였다. 프놈펜시 당국은 사전 집회금지명령을 내렸지만, 시위가 일어난 당일에는 오히려 경찰이 시위대 행렬을 보호하는 등 수동적으로 대처했다. 이들 시위대는 이날 하루 동안 프놈펜 주재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외국 대사관들을 돌며 베트남 대사관을 비난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2월에는 캄보디아에서 태어난 베트남인이 시내 한복판에서 구타를 당하다 목숨을 잃은 사건도 있었다. 당시 경찰은 일부 집단 구타에 가담한 현행범들을 일부 잡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모두 석방했다. 베트남 정부가 캄보디아 정부측에 사건의 철저한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별 성과는 거두지 못했으며 캄보디아 정부도 조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임으로서 미결사건으로 남고 말았다. 이 때문에 캄보디아에 사는 베트남인들 중에는 자신의 출신을 속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 가운데 최근 한국여행책자 제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4년 전인 2011년 <중앙북스>가 낸 <베트남, 앙코르와트>가 그것. 한국에 거주하는 캄보디아인들이 뒤늦게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고, 한국 내 캄보디아 커뮤니티가 이 문제로 들끓기 시작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책자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겉표지에는 베트남이라는 글자가 큰 글씨로, 앙코르와트는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세계여행을 많이 다녀본 전문가라면, 대번에 베트남과 캄보디아 유적지 앙코르와트 두 곳을 소개하고 있다는 걸 눈치 챌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캄보디아인들의 생각은 다르다. 단순한 의견을 넘어 격분하는 캄보디아인들도 많았다.
"<중앙북스>, 책 제목 수정하고 사과하는 게 옳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