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로 일에서 손을 떼시오!"라는 말을 들었다.
오마이뉴스
그 다음날 아침, 남편은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둘 거라는 말을 던졌다. 남편의 얼굴은 경직되어 있었다. 최근 사직이나 이직에 관한 말을 한 적이 없는 데다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60세까지는 무난하게 다닐 수 있는 회사라고 말하던 그였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회사를 그만두겠다니. 분명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어떤 부당한 이유가 있으리라 직감했다. 그것은 빗나가지 않았다.
남편이 짐을 챙기러 회사에 간 동안 아이들에게 조용히 상황을 설명했다. 납득할 상황이 아니긴 하지만 아빠의 실직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고 아이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한결같이, "거짓말~!"이라고 웃으며 받아들이다가는 이내 웃음을 거두었다가는 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이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아들이기 위한 어떤 무언가가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하룻밤 만에 벌어진 이 상황을 누구보다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은 남편이었다. 짐을 챙기고 돌아온 남편은 전날에 벌어진 상황을 담담히 전했다. 그는 말을 아꼈고 얼굴에는 웃음기가 사라졌다. 남편이 60세까지는 무난하게 다닐 수 있을 거라고 말할 때 나는 속으로 그것을 의심하였다. 남편의 쓸모가 다해지면 언제 어떻게든 버려질 것이라고. 그렇에 짐작했어도 그날은, 도둑처럼 들이닥쳤다.
"엄마는 노후 준비를 어떻게 해?"
불과 몇 주 전, 고등학생인 딸과 점심을 먹으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나는 모르는 척 "노후 준비가 뭐냐"고 되물었다. 딸은 "그러니까... 아빠가 회사를 그만 두면..."하며 말꼬리를 흐렸다. 딸의 진지한 질문에 고민할 것도 없이 "노후준비라는 거 안 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써주는 데가 없는데 나이 더 들어 육십 넘어 무슨 힘과 능력이 있어 일하느냐고 했다. 미래 세대를 재생산하고 또 젊은 시절 열심히 노동했으면 노후는 국가가 책임져 주어야 한다고 한 발 더 나갔다. 아이는 "현실이 어디 그러느냐" 했고, 나는 "그래서 이런 체제를 바꾸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누군가 노후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느냐고 물으면, 내 노후설계는 이 체제를 바꾸는 데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러나 남편의 해고 소식을 듣고 나니, 나는 노후가 아니라 당장 어떻게 살아야 할지 여러 생각을 해야 했다. 재산이라고는 낡고 오래된 집 하나가 전부, 물론 이 집이라도 있어 전세금 인상이나 애들 넷 데리고 이사 다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수입은 노후를 준비할 만큼 넉넉하진 않았지만, 한 달 벌어 한 달 살 수 있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갑자기 일자리를 잃으니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그 모든 것이 불투명하고 불안하게 다가왔다.
교육비가 가장 많이 나가니까 아이들이 공부를 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대책도 아닌 것을 대책이라고 가장 먼저 떠올렸고,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있는 대로 나열해 보았다. 오래전에 일을 그만두었으니 경력이랄 것도 없고 나이도 많아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었다. 식당종업원, 빌딩청소원, 콜센터상담원, 가사도우미, 건설현장 노동 잡부, 베이비시터, 대형마트 계산원, 보험 판매원... 그것도 건강을 전제하고 그나마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러나 그만큼 불안정한 일자리들이었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 그만 떠나라남편과 나는 1980년대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다녔다. 남편은 공부를 잘했다. 학문의 길을 가는가 싶었는데 그는 문학 석사학위를 받고는 돌연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을 선택했다. 당시 대학 졸업자들이 대체로 그랬듯이 남편 또한 어렵지 않게 사회의 문턱을 넘었다. 그럭저럭 괜찮은 대학 출신에 꽤 괜찮은 성적에 성실하고 정직한 그의 성품은 그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모두 가산점으로 작용했다.
남편은 20여 년 동안 세 차례 이직했으며 직전에는 외국계 기업에서 인사와 교육, 총무업무를 총괄하는 직책을 맡았다. 최근 2년 여 동안은 하루 평균 15시간 일을 해야 했고, 토요일과 일요일을 반납한 날도 부지기수였다.
대부분 외국기업들이 무노조 경영으로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처럼 남편이 다니던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최근 영업직 사원들을 중심으로 노조가 설립되었는데, 그것이 사용주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사용주는 그것을 빌미로 남편에게 책임을 추궁하며 사실상 강제 해고한 것이다. 남편에게 잘못이 있다면, 바보같이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다.
남편은 평소 자신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소소한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매우 꺼렸다. 행여 그럴 여지가 있을 것 같으면 일찌감치 외면하곤 했는데 이번만은 사안이 달랐다. 어떠한 실책도 없이 하루아침에 해고자가 될 수는 없었다.
아이들 넷 모두 학업중이라 교육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고 혼자 벌어 여섯 식구가 먹고 사는데, 이 상황에서 해고란 그야말로 살인적 행위였다. 우리 가족은 얼마 안 가 빚더미에 앉을 게 뻔했다. 회사를 상대로 소송하든, 사측에 직접 보상을 청구하든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남편에게 은근 소송을 권유하였으나 남편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도 막연했겠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소송에 남편은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사실 남편이 그 벽을 높게 보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무엇보다도 실직한 남편, 아빠가 되어 아내와 자식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