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표정 한미일 정상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5일 오후(현지시간) 네덜란드 헤이그 미대사관저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톡홀롬 합의 배경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통된 해석이 제출되었다. 북한 측의 의도에 대해서는 일본의 대북제재 해제를 통한 경제난 탈피와 한미일 공조 약화가 주되게 거론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아베 내각의 국내 지지율 상승이 주된 요인이라는 지적이었다. 여기에는 금번의 북일회담도 일회성이라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최근의 베이징 회담 직후에는, 한중 정상회담을 의식해 북한은 중국을, 일본은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접근했다는 해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북일관계는 결국 종속변수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습관적 평가는 2002년 평양선언 이후 제12차를 마지막으로, 북일 국교정상화 본 회담이 장기간 표류되어 왔던 것과 관련이 있다. 북일관계가 동결 상태에서 갑자기 급진전된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사실 납치문제와 제재해제라는 합의 패키지는 2008년 8월 북일 실무자급 회의에서 이미 합의된 사항이었다. 당시 후쿠다 수상의 퇴임과 더불어 백지화되었지만, 2011년 민주당 정권 시절 재추진의 시도가 있었다. 이 또한 동일본 대지진 이후 추진력을 상실했었다. 6년 만에 다시 스톡홀롬 합의로 부활한 셈이다.
그간 북일간 본 회담의 의제는 '북일국교장상화를 위한 작업부회(Working group)'에서 논의되어 왔다. 작업부회의 설치와 운영은 6자회담의 합의사항이다. 이는 북일 국교정상화 문제가 '북핵 문제'라는 틀 속에 위치해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회의구조는 이미 기능정지 상태에 있다.
반면, 북일 양국은 납치문제를 의제로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수준의 공식 회담, 즉 정부간 회담, 실무자급 회담, 하이레벨회담, 포괄병행회담 등을 전개해 왔다. 스톡홀롬 합의 패키지를 부활시키면서는 평양선언 당시의 비공식 접촉루트도 부활시키고 있다. 그리고 베이징 회담 이후에는 양국 간에 핫라인까지 설치하기에 이른다.
물론 납치문제는 북일관계는 물론 6자회담을 교란시켜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보면, 납치문제가 있기에 북일 양국은 자신들만의 의제로 만날 이유가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납치문제 이상의 것들이 논의되고 있다. 결국 과거엔 6자회담 등 국제적인 틀 속에서 북일 관계가 움직였지만 지금은 양국 간의 쌍무적인 이유에서 북일 관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한국정부는 이러한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북한의 의도] 스톡홀롬 합의의 이면북한이 의도하는 것은 일본의 제재 해제가 아니다. 북중교역이 결정적인 파탄에 이르지 않는 한, 굳이 현 시점에서 재재 해제로 현금을 얻기 위해 북한이 일본에 접근할 이유는 없다. 일본에 대한 북한의 경제의존도는 당초부터 교섭에 영향을 미칠 만한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제13차 국교 정상화를 위한 본회담으로 끌고 가려 한다. 돈 문제에 한정해서 말하면, 북중, 남북교역을 능가하는 대규모 북일 '경제협력'도 이 단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일본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이해하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부상하는 이면상의 거래가 보인다. 만경봉호 입항재개와 조총련 본부 매각문제가 그것이다. 만경봉호는 유일한 인적 물적 교류 및 교역의 합법적 루트이자 조총련에 대한 직접지도를 가능하게 하는 소통로이다. 이것이 막히면서 김정은 체제가 등장한 후에도, 조총련 의장은 평양에 입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북한의 대일접근은 모두 비공식화 되고 있고, 북한의 이러한 비공식적 접근은 일본에서 공작 활동으로 비쳐진다. 물론 북한의 입장에서는 대일 통일전선 사업이다.
조총련은 대일 통일전선 사업의 거점이기도 하지만, (준) 대일공관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해 왔다. 북일관계가 정상화에 접근할수록 후자의 역할이 확대된다. 그렇다면 일본에서의 현실은 어떠한가. 얼마 전까지 도쿄의 조총련 본부건물이 건설업체에 경매처분되어 있었다. 본부건물이 허물어지고 맨션이 지어질 운명이었다. 이 상황을 되돌리지 않는 한 북일관계는 일회성이 될 수밖에 없다.
조총련 본부건물의 매각결정 중지판결이 내려진 것은 베이징 회담 직전이다. 북한이 선뜻 '만족할 만한' 납치문제 조사위원회의 설치를 일본 측에 제시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일본정부는 '법치'를 강조하며 총련 본부 매각문제에 대한 관여를 부정하고 있다. 만경봉호의 출항은 앞서 언급한 북송자 가족 문제 등의 '포괄적 해결' 속에 이루어질 것이다. 과거 재일동포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이동한 일본인 배우자 등 일본인 국적자는 700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의 방일을 허용하게 되면 도항 문제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경봉호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일본의 의도] 납치문제, 재정의의 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