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에게 물려준 나의 첫 만년필 'LAMY 사파리'
전형우
내가 처음 만년필을 쓰기 시작한 건 2007년, 스무 살 재수 시절이었다. 필기구에 욕심이 많아 '펜텔' 샤프니 '제브라' 볼펜이니 이것저것 사들였다. 여러 필기구를 떠도는 역마살(?)이 끝난 건 만년필 덕분이었다. 시작은 3만 원짜리 '라미(LAMY) 사파리' 만년필이었다. 단가는 볼펜보다 훨씬 비쌌지만 더 진하게 잘 써졌고 사용할수록 내 필기습관대로 촉이 변해갔다.
며칠 쓰고 버려지는 볼펜들보다 만년필에 더 애착이 생겼고 비싼 가격 덕분에 쉽사리 다른 필기구로 바꿀 수도 없었다. 나의 첫 만년필은 대학교 수시 논술시험에서도 빛을 발했고, 대학에 와서 군대 가기 전 1년 동안 함께했다. 군대에 가면서 친한 동기에게 쓰던 만년필을 선물했는데 그 친구는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군대에서 첫 크리스마스를 맞은 내게 어머니는 새로운 만년필을 선물했다. 사실은 내가 인터넷 주문을 하고 어머니가 돈을 냈다. '펠리칸(Pelikan)'이라는 독일 브랜드의 만년필인데 들어가는 잉크량이 많아 '고시생 전용 만년필'로 불린다.
그때만 해도 전역 후에 행정고시를 볼 생각이어서 만년필이 꼭 필요하다며 어머니를 졸랐다. 10만 원이 좀 넘는 만년필을 선물하면서 어머니는 "비싼 펜으로 시험 치면 저절로 답이 써지냐"며 우스개로 핀잔을 주기도 하셨다.
경계 근무를 설 때 나는 종종 노트와 만년필을 들고 나가서 글을 끼적였다. 물론 경계를 소홀해서는 안 되지만 사병들은 모두 각자 2시간의 근무시간 동안 심심함을 버텨낼 거리를 준비했다. 어떤 선임은 벽에 낙서를 하거나 스도쿠를 했고, 어느 후임은 꾸벅꾸벅 졸거나 노래를 흥얼거렸다.
나만의 손 글씨와 내 습관대로 변해가는 만년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