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루엔 양의 최신작 <의화단-소년의 전쟁>과 <의화단-소녀의 전쟁>
비아북
바오가 작은 형이 붙잡은 비바아나에게 말했다.
"양놈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말해. 그럼 기꺼이 풀어주지. 아니면, 널 죽일 거야."
중국인 천주교도였던 비비아나는 바오에게 마지막으로 기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바오는 거듭 말했다.
"이봐, 난 정말 널 죽이고 싶지 않아. 신앙을 포기해. 그럼 보내줄게."하지만 비비아나는 "그럴 수 없어"라며 '신앙을 포기하라'는 바오의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바오는 비비아나를 죽였다. 이후 바오도 베이징에 들어온 외국 군대에 의해 살해됐다.
의화단운동의 주인공은 누구인가?중국계 미국 만화작가인 진루엔 양의 최신작 <의화단-소년의 전쟁>과 <의화단-소녀의 전쟁>(비아북)에는 각각 의화단에 가담한 바오(소년)와 천주교에 귀의한 비비아나(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만화 <의화단>은 제목 그대로 '의화단운동'에 관한 이야기다.
백련교 계통의 비밀결사조직이었던 '대도회'(大刀會)에 뿌리를 둔 의화단은 청대 말기(19세기 말) 민중봉기를 일으켜 외국 선교사들과 외교관들, 천주교로 개종한 중국인들을 죽였다. 이들은 지난 1900년 베이징까지 쳐들어갔지만 서구 열강의 군대들의 반격으로 봉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권 대표 이홍장과 11개국 대표들이 '적대행위를 중단하고, 외국열강에 배상금을 지급한다'는 '신축조약'에 조인함으로서 의화단운동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지난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87명의 중국인 신도를 시성(諡聖, 천주교가 공경할 성인으로 선포하는 일)했다. 이는 로마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교황이 성인으로 선포한 87명의 다수가 1900년 의화단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이었다. 중국 정부는 즉각 시성에 항의하는 성명를 냈다. '가톨릭교회가 중국 전통을 배반한 사람들을 성인으로 추대했다'는 것이다. 이를 계기로 진루엔 양은 의화단운동에 관심을 갖고 관련자료들을 조사해 나갔다. 그러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이 사건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어느 편이 더 우리의 연민을 사야 마땅한가? 의화단에 가담한 민중들일까, 아니면 그들의 중국인 천주교도 희생자들일까?" 이러한 고민과 갈등이 <의화단>을 그리게 된 동력이었다. 지난 1900년 절정에 이르었던 의화단운동의 기본축은 중국 민중과 서구 열강(제국주의)의 대립이다. 하지만 <의화단>에는 천주교 등 외세를 배격하는 중국 민중(의화단세력)과 천주교를 받아들인 중국 민중(중국인 천주교도들)의 갈등구조가 깊게 깔려 있다. 그런 점에서 <의화단>은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나는 누구인가?"라며 자기정체성을 탐색했던 전작 <진과 대니>(American Born Chinese)와도 맞닿아 있다.
바오는 아버지가 외국 군인들에게 폭행당한 사건을 계기로 의화단운동에 가담해 서구 열강과 중국인 천주교도들의 횡포에 맞선다. 이는 "중국을 위해서"라는 자신의 신념으로 정당화된다. 반면 비비아나는 자신의 이름(그는 집에서 '네째'로 불렸다)조차 지어주지 않은 가족(중국 전통문화)에서 안식처를 발견하지 못해 천주교에 귀의한 뒤 의화단세력에 맞선다. 하지만 비비아나는 바우에 의해, 바우는 외국 군대에 의해서 죽음을 맞는다.
진루엔 양은 바우와 비비아나 그 누구도 정당화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양쪽에 서 있던 두 사람은 중국 근대사의 양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루엔 양도 한국어판 서문에서 "모두에게 연민을 느꼈다"라고 고백했다. 그는 "그들은 상대에게 끔찍한 폭력을 저질렀지만 마음은 한 가지였다"라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자신들 삶의 양식과 문화적 정체성을 온전히 유지하고자 소망했던 것이다"라고 적었다.
진루엔 양은 책이 출간된 이후 여러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이 책을 통해 언제나 갈등의 양쪽면을 보게 되면 좋겠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인터넷 세대로 자란 아이들은 조금 과장된 정의감을 가지고 있다. 어른으로서, 이렇게 된 데는 나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관용을 배우고, 사물의 양면을 보게 된다면 그 부채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