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9월 8일 오후 국회 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환헤지 피해대책 마련을 위한 공청회에서 환 헤지를 위해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인 등 관계자들이 '키코아웃'이라고 쓴 종이카드를 들어보이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 금융의 관행은 위험을 함께 부담하지 않고 오로지 소비자와 채무자에게만 전가하는 데 있다. 기업에 필요한 자금 공급으로서의 대출 상품은 은행의 전문성으로 기업평가를 제대로 함으로써 위험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업 대표자의 보증을 통해 대출 위험을 쉽게 처리해 버린다.
물론 어떤 면에서 은행이 망하면 세금이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위험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은 은행이 망하지 않는 사업을 하도록 많은 영업 규제를 한다. 최악의 세금 투입사태를 예방하려고, 은행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위험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무책임하게 운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납세자의 이익과 소비자의 이익이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우리나라 은행들의 관행은 모든 위험을 소비자에게 전가함으로써 마치 납세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행세한다. 그 결과 기업 대출은 언제나 대표자의 보증이 따라붙는다. 이제 파생 금융상품 계약서 한 장으로 법정관리에 들어선 기업의 빚이 대표자 개인의 빚으로 전가된다.
앞서 사례자 조아무개 대표는 350억 원 회사 대출 중 190억 원을 책임져야 했다. 일부는 기업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해결했지만, 나머지는 조 대표의 개인 자산을 헐값에 처분하면서 갚아야 했다. 무역인상, 대통령 표창까지 받던 수출 애국자가 하루아침에 모든 자산을 처분하고도 빚을 떠안고 살아야 하는 연체자 신분이 되었다.
주부에게도 3억 원 갚아라... 집요한 대부업체 추심조 대표는 결국 자산을 전부 처분하고도 남은 빚 때문에 법원의 개인회생 절차를 밟았다. 개인회생은 빚 전체를 안 갚는 것이 아니라 소득의 범위 내에서 최대한 갚아나가는 채무 조정 프로그램이다. 기업의 모든 자산과 지분을 빼앗기고 개인의 집도 빼앗겼지만 그래도 거래처가 살아 있고 기술이 있는 한 새 출발에 자신 있다 여겨, 과감히 만져보지도 못한 돈을 법원을 통해 조정해 갚았다. 그러나 금융의 탐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집을 처분해서 갚고도 남은 6억 원의 대출 채권을 은행이 대부업체에 헐값에 팔아 넘겼다. 여전히 그 채권은 살아서 채무자를 괴롭힐 틈을 노리고 있었다. 조 대표의 채권은 담보물이 있기 때문에 70% 가격에 팔렸을 것이다. 채권의 2차 시장에서는 6억 원짜리 대출이 5억6천만 원에 팔려 담보물인 집을 처분해 5억 원 이상 회수하는 실적을 챙겼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남은 빚이 3억 원이라는 것이다. 집을 처분해 갚은 빚은 원금부터 계산한 것이 아니라 연체 이자부터 제했다고 한다. 조 대표는 개인회생으로 절반 가까운 빚을 다시 갚았다.
그리고 이제는 법원을 통해 빚을 조정해 다 갚았으니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었다고 여긴 순간, 채권 추심회사로부터 다시 추심 통지가 날아왔다. 당시 배우자가 연대보증을 했기 때문에 배우자가 3억 원 빚을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채권이 대부업체에 여전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으로 모든 것을 빼앗기고 마치 남의 빚을 갚듯 전부 털어 넣었음에도 평범한 주부인 아내에게도 추심을 한다. 이미 충분히 이익을 실현하고도 차고 넘쳤을 금융회사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대부업체에 헐값 매각할 거면서... 왜 채무자에게 적극적 채무조정 안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