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놓여진 먹다 남은 김밥.
정대희
호위무사와 황제출근, 그리고 잠 못 드는 농성자천막에 맺힌 아침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전날 한전의 기습적인 공사 재개가 낳은 결과다. 주민들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지만, 낯빛에서 긴장감이 읽힌다. 새벽 6시, 송전탑 건설 예정지의 하루가 밝아왔다.
해가 뜨자, 경찰들의 움직임이 재빨라졌다. 농성장 앞뒤로 줄지어 선 경찰 차량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도로 위에 차량 행렬이 늘어날수록 경찰 병력은 늘었다. 압도적인 경찰 숫자에 주민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의 모습이 파묻혀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다. 경찰 떼가 삼평리 일대에 새까맣게 밀려들자 곧이어 송전탑 공사 자재를 실은 차량이 등장했다. 순간,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던 농성자들이 먹다 만 김밥을 내팽개치고 공사 차량으로 뛰쳐나갔다.
송전탑 건설 공사 자재를 둘러싸고 경찰과 농성자 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정작 자재 주인에 해당하는 한전 직원은 울타리 너머로 이들의 몸싸움을 지켜볼 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이어졌다. 한전 직원들은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울타리 안팎을 드나든 반면, 농성자들이 울타리 근처로 접근하면 경찰이 막아서며, 이를 제지했다.
'황제출근', 농성자들 사이에서 한전 직원의 출근길을 비꼬는 말이다. 한전 직원이 출·퇴근할 때마다 이어진 경찰의 호위가 이 단어를 탄생케 했다. 한 주민이 경찰을 막아서며, 목청껏 소리쳤다.
"와 우리만 막고 한전 직원들은 가만 두노. 경찰이 한전 경호원도 아니고, 와 꼬박꼬박 세금 내는 국민만 (힘으로) 내팽개치고 그놈들만 감싸노."오전 8시 45분, 그 시각 울타리 너머 야영장에서는 전날 밤, 송전탑 건설공사를 끝마치고 밤을 보낸 한전 직원이 분주하게 텐트를 걷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