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이 그린 아들 성남
이상기
1941년 제 20회 <선전>에 '맷돌질하는 여인'이 입선했고, 1942년 봄 첫아들 성소(成沼)를 얻는다. 그리고 그해 <선전>에 사랑스런 첫아들을 안은 아내를 모델로 그린 '모자(母子)'를 출품해 입선한다. 1945년 박수근은 평양에서 해방을 맞는다. 그해 11월 김화군 금성중학교 미술교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신자여서 공산주의 정권에서 감시를 당했다고 한다.
1947년 차남 성남(成男)이 태어났으나, 불행하게도 1948년 장남 성소가 뇌염으로 죽는다. 1950년 6·25사변이 일어나 박수근 가족은 남쪽으로 피난했고, 1952년 창신동에 정착할 수 있었다. 1953년에는 제2회 <대한민국 미술전(國展)> 서양화부에 출품한 '집'이 특선에 선정되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기법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단순 소박한 주제, 굵고 검은 선의 윤곽, 흰색, 회갈색, 황갈색 주조의 평면적 색채, 명암과 원근감의 배제 등이 두드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