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전 장관.
권우성
"정말 쌀, 농업이 얼마나 국가적으로 중요한지 몰라요. 농민없는 국가가 있을 수 있어요? 농업없는 나라가 있을 수 있어요? 지금 정부에는 '쌀 시장 완전개방'만이 국익이라는 '어용'들이 판을 치고 있어요."노(老)교수의 입담이 여전하다. 김성훈 중앙대 명예교수의 말이다. 지난 18일 김 교수는 정부의 쌀 시장개방 발표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한다"고도 했다.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이 농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 했던 말을 꺼내 들었다. 실제 지난 2012년 11월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대선후보 토론회 때 박 후보는 "농업은 시장논리에 맡길 수 없다, 농업 만큼은 제가 직접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에 그런 말을 했었군요."그래요. 약속한대로 이제 박 대통령이 나서야죠. 시장논리에 맡길 수 없다고 해놓고, 관세화 완전개방을 발표하는 것은 말이 안되지요. 비겁하게 힘없는 농림부 장관 뒤에 숨지말고..."
- 장관의 발표가 곧 대통령의 생각과 다름없지 않을까요."그렇다면, 더더욱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나서서 이야기를 해야지요. 대선 때 그렇게 약속해놓고, 아무리 농민들 표가 필요해도 그렇지요. 지금 쌀 시장 개방에 대해 박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죠."
그는 박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화도 소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농업 보호와 육성만큼은 진정성있게 추진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경제기획원에서 2000불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 소고기 개방론을 펼쳤어요. 박정희 대통령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불같이 화를 냈어요. 그 이후부터 경제부처에서 쌀이나 소고기 수입 이야기가 쏙 들어갔지요."김 교수는 "박 대통령이 최소한 아버지의 뜻이라도 따라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20년넘게 국내 농업과 농촌 개혁을 위해 일해온 사람이다. 20년 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때는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 등과 함께 '우리쌀 지키기 범국민비상대책위'를 꾸리기도했다.
"'시장 논리에 안 맡기겠다'고 약속한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당시 경실련 농업개혁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비대위 활동을 이끌면서 대정부 투쟁을 주도했다. 이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과정에서 농민과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했고, 지난 김대중 정부 때 농림부장관까지 역임했다. 그는 정부가 추진중인 쌀 관세화를 통한 시장개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시장만능주의와 개방론자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 정부는 올해 말로 세계무역기구(WTO)와의 쌀 관세화 유예기간이 끝나는 점을 들면서, 시장개방의 불가피성을 말하고 있는데요."그러니까, 내년부터 쌀에 관세를 매기면서 시장을 푼다는 거 아니예요? 정부는 마치 WTO 협정문에 (따라) 20년의 유예기간 후 관세화를 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요. 그런 내용은 협정문 어디에도 없어요.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 이제껏 쌀시장 개방을 유보하는 대신 의무적으로 우리가 쌀을 수입해왔고, 이 물량이 더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하니까요."그렇지요. 지금 우리가 해외에서 수입하는 쌀이 40만9000톤이에요. 이게 전체 쌀 소비량의 9% 수준이에요. 이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는데, 만약 정부말대로 관세화로 시장을 개방한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이 물량이 안들어오는 게 아니에요."
- 시장개방을 해도 계속해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그래요. 우리가 쌀 시장을 개방하든, 안 하든 이 물량은 계속해서 수입해야 해요."
- 지금 정부 주변에선 이미 내년 1월 쌀 시장 개방을 기정사실화로 놓고, 관세율을 어떻게 잡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습니다."(고개를 절레 흔들며) 그 어디에도 우리가 내년 1월에 쌀 시장을 개방해야 하는 의무나 근거가 없어요. 오로지 시장개방론자들의 잘못된 상상력에 따른 억측일뿐이에요. 예전에도 국내 쌀시장 개방 이야기 나왔을 때, WTO 사무총장이 우리나라에 와서 '협정문 어디에도 근거 없다'고 말을 했어요. 한국과 쌀 수출국이 협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 현재의 쌀 자급도 등을 봤을 때 400% 이상 쌀에 관세를 매기면 충분히 우리 쌀도 경쟁력이 있다고 하는데요."그것도 문제예요. 우리가 이제껏 해외로부터 공식적으로 쌀을 수입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관세를 매길 때 기준으로 삼아야 할 가격자체가 없는거예요. 일본이나 대만은 관세화 개방을 하기 전에 부분적으로 수입한 예가 있어서, 그에 맞게 500~800%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는..."
"쌀에 매길 관세 기준이나 근거도 없어... 시장개방은 농업 붕괴로 이어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