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어머니와 내가 모시고 사는 눈치, 꽁치, 망치
최창엽
"길고양이 키우고 있어요.""말 잘 안 듣지 않아요? 크면 도망간다던데?"
길고양이를 키운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반응한다. 나는 세 마리의 길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다. '집사'는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흔히 '길냥이'라고 부르는 길고양이를 어쩌다 보니 '냥줍(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줍다)'하게 됐다.
이름은 꽁치, 망치, 눈치다. 전부 다 길고양이가 많은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살 때 가족이 된 아이들이다. 어머니와 내가 번갈아 발견하고 데려오다 보니 이제는 대가족이다. 모두 내 앞에서 발라당 누워서 잠이 들고, 집에 들어오면 하나같이 달려나와 마중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길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고양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동물'은 곧 품종 구별이 가능한 '순종 강아지'였다. 유기동물에도 관심은 있었지만 그 '유기동물' 또한 버려진 '애완용 강아지'에 국한됐다.
골목에서 흔히 보던 고양이는 단순히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터뜨리는 '짐승'일 뿐이었다. 개와 달리 인간에게 불친절하고, 개와 달리 건물을 넘나들고, 특히 귀신같이 꿰뚫어 보는 눈빛은 도저히 정이 들 수 없는 '흉물'이었다.
지금 아이들을 '흉물'이 아닌 '예쁜이들'로 볼 수 있게 된 계기가 있다. 고양이와 맺었던 첫 번째 인연이, 지금은 떠나보낸 그 아이가 종종 떠오른다.
첫 인연이 눈 앞에서 죽었다때는 2008년, 대학교에 갓 입학하여 용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던 가게의 테라스였다. 눈곱과 콧물이 얼굴을 뒤덮어 눈도 제대로 못 뜨던 새끼고양이를 발견했다. 스무 살에 처음 마주한 그 길냥이는 성인의 주먹 정도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 모두 데려가서 좋을 게 없다고 할 정도로 병약했다. 집안 사정으로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떠나보낸 강아지들 얼굴이 떠올라서였는지, 돈을 손에 조금이나마 쥔 스무 살의 패기였던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아이를 바로 데려왔다. "몸만 나으면 바로 좋은 곳으로 입양을 보내야지"라고 생각해서 '고양이'라고 이름 지었다. 좁은 자취방에서 나는 이름이 고양이인 고양이와 동거를 시작했다.
고양이에 대해 하나도 모르던 나는 '냥이네', '고양이라서 다행이야' 등 고양이 관련 카페에 서둘러 가입해 공부를 시작했다. 개와 달리 고양이는 고양이 전용 화장실을 사 놓으면 알아서 용변을 본다는 사실을 이 때 처음 알았다. 이 아이처럼 검은 털에 하얀 색이 부분적으로 나 있으면 '턱시도'라고 불린다는 점도,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개와 비교하자면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점은 강아지와 다를 바 없이, 정을 주는 사람에게 애착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카페가 알려주지 않았다. 이 아이와 생활하면서 몸소 느꼈다. 늘 내 옆에 붙어서 잤고, 새벽에 배고플 때는 내 코를 아프지 않게 깨물었다. 밖에서 돌아오면 앵앵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비로소 든 생각, 나는 왜 고양이를 흉물이라 생각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갑자기 죽었다. 주변인들의 걱정대로였다. 몸무게가 300그램에 불과했던 이 아이는 병원을 꼬박꼬박 가야 했다. 2~3일에 한 번 꼴로 동물병원을 찾았고, 갈 때마다 평균 5만 원씩 들었다. 과외와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내 돈은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나아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문제는 병원에서 늘 주던 작은 캡슐의 약이었다. 더 체구가 작았을 때도 잘 삼키더니 어느 날 운이 좋지 않았다. 약이 목에 달라붙었고, 눈앞에서 질식했다. 이미 죽은 아이를 데리고 근처 동물병원을 뛰어다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수의사를 원망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식한 내가 죽인 것이다. 그때의 죄책감 때문에 세 마리의 고양이가 우리 집의 식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대신 가족이 된 아이들너무 작고 약해서, 이웃 어른이 던진 물건에 맞아 다리를 절게 되서, 까불고 다니다 길을 잃어서 등 각자의 사정으로 우리 집에 입주하게 된 아이들이다. 꽁치, 망치, 눈치. 모두 노란 털의 흔히 볼 수 있는 길냥이다. 하지만 나와 가족이 되기 전 아이들이 겪었던 일이 이들의 성격을 확실히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