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인들이 명나라 장군 두사충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 박기돈 고택 담장 아래에 모였다.
정환규
지난 20일(일), 30도 넘는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네팔인 12명이 걸어서 대구 도심 역사 여행에 나섰다.
이들은 대구공정여행A스토리(대표 김두현)가 준비한 '공정 대구 도심 도보 여행'에 참가하여 2시간 반 동안 경상감영공원에서 계산성당까지 걸었다. 정만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 예술인과 네팔 현지에 4년간 거주한 경력이 있는 이경 A스토리 이사가 해설과 통역을 했다.
이들의 첫 출발지는 경상감영공원이었다. 공원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곳은 본래 경상감영이 있던 곳이다. 지금도 공원 내에는 감영 건물이었던 선화당(대구시 유형문화재 1호)과 관찰사 관사였던 징청각(유형문화재 2호), 그리고 '절도사 이하 하마비', 여러 관리들의 선정비 등이 역사유적으로 남아 있다.
1601년부터 1910년까지 대구는 영남의 총본부대구에 경상감영이 들어선 때는 1601년. 임진왜란 또는 7년전쟁으로 흔히 일컬어지는 일본의 침략전쟁이 끝난 직후의 일이다. 경삼감영은 그때부터 1910년까지 310년 동안 줄곧 대구에 있었고, 253명의 관찰사가 근무했다.
정만진 해설가는 "어떤 책은 선화당을 지금의 대구시청, 징청각을 시장 관사 식으로 비유하지만, 잘못"이라면서, "당시 경상도 관찰사의 관할 구역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준이 아니라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경상남도, 경상북도에 지금의 대구광역시를 포함한, 즉 영남 전역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는 "경상도 관찰사는 행정권만이 아니라, 영남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의 군사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주 높은 관직이었다. 그래서 선화당 앞에 '절도사(관찰사) 이하는 모두 말에서 내려서 걸어오라'는 비석을 세워둘 만했던 셈"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