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에 채동욱 '제거'로 맞선 박근혜 정권

다시 보는 2013년 한국정치史④

등록 2014.07.19 15:35수정 2014.07.1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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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공 넘긴 경찰의 국정원 여론공작 혐의 수사

대선 기간 새누리당, 경찰, 국정원의 공모로 은폐되었던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은 박근혜정부 공식 출범 이전인 2013년 새해 벽두부터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2013년 1월 3일, 서울 수서경찰서는 국정원 직원 김하영이 2012년 8월 말부터 12월 10일까지 '오늘의 유머' 등의 사이트에서 16개의 아이디로 대선 관련 글에 찬반을 표시한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그 직후 강제수사로 전환해 김하영을 소환하는 한편, 1월 31일에는 그녀가 대선 현안을 포함한 정치·사회문제와 관련해 이명박정부와 새누리당을 옹호하는 글을 인터넷상에 다량 게시한 사실이 알려졌다.

국정원은 "정상적 대북심리전 활동 과정"이라 둘러댔지만 이로써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뚜렷해져가는 동시에 대선 직전 서울지방경찰청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가 도마에 올랐다.

2월 3일 수사책임자인 권은희 수서서 수사과장은 전보조치 되었고, 국정원은 민주당에 정치개입 사실을 제보한 직원을 파면, 고소했다. 이에 민주당은 국정원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한편,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을 '직권남용'(아직까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아니었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싼 여야 대치가 장기화되고 이에 따른 청와대·내각의 파행적 운영상이 부각되면서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는 쟁점화하지 못했다. 실제 박근혜정부의 청와대·내각 기능은 3월 18일에야 정상화되었다.


이 때 야당은 두 문제를 유기적으로 엮어 공세를 펼 필요가 있었으나 정권 발목잡기라는 비판이 두려웠을 것이다. 물론 이에는 아직 국정원의 대선 개입 문제가 경찰수사 중이었던 사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다만 다급해진 새누리당은 정부조직법 개정 합의를 위해 3월 17일 야당의 국정원사건 국정조사 요구를 받아들였다. 박 정권의 대야(對野) 타협은 현재까지 이것이 유일하다.

다음 날, 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라는 국정원 내부자료를 공개했다. 그 내용은 원세훈 원장이 직원들에게 직접 국내정치 개입과 여론공작을 지시한 것으로서 이명박 정권 중반기부터 국정원이 '대국민 심리전'을 주도했음을 방증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야당·시민단체의 대응 역시 분주해졌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를 필두로 민변·참여연대·민주노총 그리고 민주당이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원세훈을 검찰에 고발한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은 4월 10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방해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이후 특별수사팀이 꾸려져 검찰수사가 본격화된 시기에도 계속되었다(국정원의 검찰 수사 방해 내용은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박근혜 정권 1년 失政 보고서>, 2014, 21∼22쪽에 정리되어 있다).

4월 18일, 마침내 수서경찰서는 4개월간의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다. 경찰은 그간 혐의를 받아온 국정원 직원 2인과 일반인 공범 1인에게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 검찰 송치함으로써 국정원의 여론공작 혐의를 입증하였다. 이는 '정상적 대북심리전 활동'이라는 국정원의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당초 이들의 주요혐의였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배제하였다. 또한 애초 국정원의 조직적 정치개입을 염두에 두지 않음으로써 국정원 심리정보국장 등의 핵심 용의자를 조사하지 않았다.

사실상 경찰은 공직선거법 공소시효(선거일로부터 6개월)가 목전에 다가오자 검찰에 공을 떠넘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에 '부실수사', '정권 눈치보기식 수사결과'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로써 향후 사태의 향방과 여론의 추이는 검찰 수사에 좌우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다음 날 권은희 전 수서서 수사과장이 서울경찰청의 수사 방해 및 개입 사실을 폭로하면서 대선 직전 경찰의 중간 수사발표 역시 '선거 개입'의 차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대선 이후로 '이월'돼 해결이 어렵게 된 관권부정선거 문제

한편, 18일 당일 검찰은 윤석열 여주지청장을 팀장으로 하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을 신속하게 구성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특별수사팀(이하 특수팀)에 철저 수사를 지시하였다. 이후 검찰 수사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되었다.

즉 국정원의 여론공작을 통한 대선개입과 서울경찰청의 수사 개입 및 대선 개입 여부였다. 한마디로 원세훈과 김용판의 혐의가 주요 수사 대상이었던 셈이다. 이는 검찰이 박 정권의 '제압대상 1호'로 떠올랐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검찰 수사는 5월 말까지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방해하기 위한 서울경찰청의 증거인멸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때 민주당은, 이명박 정권이 국정원의 여론공작을 주도한 정황을 자당 의원이 두 차례에 걸쳐 폭로했음에도 정작 '이명박정부 책임론'은 전혀 제기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해 어떠한 반민주적 불법을 저질렀는지를 파헤치고 그것을 단죄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검찰수사만 바라보는 듯한 인상이었다. 이런 민주당의 태도는 능동적이라 보기 어려웠고, 상황을 주도하기에는 미흡하였다. 이 때문에 이후에도 '수세'에 몰렸어야 할 박 정권이 오히려 정국주도권을 행사하는 적반하장의 현실이 계속된다.

한편, 수사 초기부터 특수팀에 가해졌던 박 정권의 압력은 원세훈, 김용판(이하 원·판)에 대한 기소가 다가오면서 한층 거세졌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원·판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및 구속여부였다. 만일 그것이 두 인물에게 적용될 경우 18대 대선의 불법성이 공식화되어 박 정권의 정당성에 치명타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6월에 접어들어 청와대는 우선 황교안 법무부장관으로 하여금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게 하며 검찰을 압박케 하였다. 이것은 검찰에 대한 청와대의 '공식적' 압력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채동욱 검찰총장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은밀히 개시하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과 함께 공직자 감찰 업무와 무관한 총무비서관실, 교육문화수석실, 고용복지수석실, 그리고 국정원까지 나서 채 총장에 대한 불법사찰을 진행하는 한편 그의 혼외아들로 추정된다는 채아무개군 모자의 개인정보를 무단 조회하기 시작했다. 이는 정권의 핵심 측근 그룹이 총동원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서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상위의 존재가 채동욱 제거 프로젝트의 주체였음을 시사한다.(<한겨레> 2014. 3. 21 ; 3. 25 ; 3. 26 참조)

한편 검찰의 행보는 황교안 장관의 '내부 의견교환'과 '시간 끌기'라는 수단에 막혀 보름 동안이나 제약받았다. 황교안이 누구였던가? 그는 2005년 8월 노회찬 의원이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하여 고소를 당했을 때 검사로서 이 사건을 담당한 인물이다. 당시 그는 삼성 로비를 받은 검사는 전원 불기소하고, 이를 폭로한 노 대표와 이를 보도한 기자만을 기소하였다.

아무튼 황 장관의 방해로 인해 애초 검찰 내부에서 원세훈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키로 하였던 사법처리 수위 결정도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속에서 공소시효는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6월 11일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은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총선, 대선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것은 명확한데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금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윤석열 팀장은 원세훈의 선거 개입 혐의를 구체적으로 거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하고 선거에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코미디다. 선거개 입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종북대응이라고 생각하고 중간 간부에 의해 실행됐다 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다. 국정원 중간 간부들도 검찰 수사에서 이미 윗선의 지시에 의해서 한 것이라고 시인을 했고 그 지시와 관련된 녹취록도 제출했다.

또 대검 공안부도 한 달 전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데 동의했다. 그런데 장관이 저렇게 틀어쥐고 있으면 방법이 없다. 이런 게 수사지휘권 행사가 아니면 뭐냐. 채동욱 검찰총장도 자리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 사건을 최소한 불구속기소라도 해서 공소유지를 해보려고 참고 있는 것이다."(<문화일보> 2013. 6. 11)

이와 함께 수사팀의 또 다른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에서는 황 장관을 통하지 않고서는 검찰총장이 그 어떤 것도 못하게 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하였다.

청와대·법무부의 검찰에 대한 압력은 이미 세간에 알려진 터였지만, 이로써 그것이 더욱 확연해졌다. 아울러 이 인터뷰에서 윤 팀장이 원세훈의 혐의 사실 입증을 강한 톤으로 언급한 점이 주목된다. 이 보도가 나간 직후 검찰 내부는 급박하게 돌아갔고, 오후 4시 무렵 검찰은 원세훈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되 불구속 기소한다는 사법처리 방침을 발표했다. 이어 6월 14일, 마침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그간의 수사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 2013년 1월∼6월 초까지는 '긴 18대 대선'이 본격화되기 이전 단계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기본적으로 경찰·검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그 결과에 이목이 집중된 시기였다. 그런 한편 박 후보를 돕기 위해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박근혜 정권은 경찰·검찰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며 수사를 제압하려 하였다. 국정원 역시 검찰수사를 방해하거나 비협조로 일관하였다.

이와 함께 이 시기는 대선 직후 및 새 정부 출범이라는 상황과 맞물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3월까지는 사상 초유의 인사파동과 그에 따른 청와대·내각의 파행적 운영상이 주로 부각되었다. 그리하여 관권부정선거 문제가 인화성을 갖기 어려웠다. 또한 이제 막 전열을 정비한 박근혜 새누리당 정권은 정권에 불리한 방향으로 가는 검찰 수사를 제압하고자 총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이 시기는 대선 과정에서 입증되고 매듭지었어야 했을 18대 대선의 불법성 규명 자체가 대선 이후로 '이월'됨으로써 문제해결이 녹록찮게 되었음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 점은 이후 박근혜 정권 차원을 넘어 한국정치·사회 전반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경향신문>, <노컷뉴스>, <뉴스토마토>, <뉴시스>, <문화일보>, <연합뉴스>, <오마이뉴스>, <한겨레>, <한국일보>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박근혜 정권 1년 失政 보고서>, 2014.
#검찰 #경찰 #국정원 여론공작 #채동욱 총장 #황교안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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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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