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촛불사랑해안사랑해 게임이 끝난 후
촛불을 켜고 둘러 앉아
우리의 이웃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김재훈
사실 나는 '기도'라는 주제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웃'이라는 주제가 하고 싶었다. 나를 제외한 2명은 '기도'가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였고 난 둘의 의견에 따랐다. 내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었지만 재빠른 결정이 내려졌다. 늦게 결정하면 다른 조들이 좋은 주제를 선정하게 되어 우리 조가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이웃'이라는 주제를 하게 되면 나를 제외한 다른 2명의 조원이 손해를 보게 되는지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난 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하지 못하는 손해를 보게 된 것은 분명했다.
자신의 의사를 밝히지 못한 내가 만들어낸 손해였지만 조금 더 날 배려했으면, 조금 더 친절하게 나에게 하고 싶은 주제가 무엇이냐 물어봐주었다면 손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대화를 해보니 나를 제외한 둘은 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둘은 전부터 이웃이었으니 내가 손해를 보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수업에서 나에게 위안이 되는 이웃들이 있으니 바로 그들은 중국 유학생들이다. 한국 사람이 한글로 글을 쓰고 한국말로 발표를 해도 어려운데 중국 유학생 둘이서 과제를 준비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중국 유학생들의 발표를 보고 우리의 이웃인 그들을 도와주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한 교실에 앉아 있는 이웃이지만 누구 하나 친절하게 말 걸어주는 사람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그들은 확실히 손해를 보고 있었고 왜 손해를 보게 되는지, 손해를 줄일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이, 그들은 그 손해의 몫은 고스란히 받고 있었다.
만약 조를 짜는 방법이 한 사람씩 주제를 선택하고 같은 주제를 선택한 사람이 한 조가 되는 것이었다거나, 중국 유학생들과 한 사람은 꼭 함께 조가 되어야 한다는 룰이 있었다면 중국인 유학생들도 그리고 나도 조금이라도 손해를 줄이고, 더 즐겁게 과제를 수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중국 유학생들과 같은 조가 되는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는 한국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실망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이야기를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편적인 모습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말 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야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라왔고, 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허나 우리는 이러한 올바른 삶을 실천하며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나 자신도 배려하며 살기 어려운 삶, 내 가족의 행복도 지속시키기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 남을 우리의 이웃을 챙기면서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도와주고 그들과 함께 연대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나부터 주위를 돌아보면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내가 주위를 배려하지 않으면 그들도 나를 배려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오는 손해는 나와 내 주위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다.
내가 먼저 주위를 배려하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들이 나를 배려하고 다른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우리들의 행복한 삶이 시작된다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의 시작점이 당신이 되는 것은 어떨까?
'당신은 당신의 이웃을 사랑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밝게 웃으며 대답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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