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서울 간 고속화도로를 지나는 직행좌석형 광역버스의 입석 운행이 금지된 첫날인 지난 16일 서울 강남역 인근 버스정거장에서 용인방면으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하려는 시민이 좌석이 없어 길게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일 국토교통부는 우려의 목소리에도 '수도권 광역버스 입석 금지'를 강행했다. 시행 전부터 여러 수단으로 홍보했지만 시행 첫 날,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주요 정류장은 혼란스러웠다.
국토교통부가 이런 규제를 시행하게 된 이유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문제에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고속도로에서는 입석 승차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첨두시간(하루 중 도로에 차가 가장 많은 시간)대에 몰리는 승객을 거부할 수 없고, 버스 회사의 수익도 고려해야해 불법을 눈감아 왔지만 이번에 바로잡겠다는 의미다.
불법 눈감아 오다 왜 갑자기?충분한 근거를 가진 규제지만, 다소 성급하게 시행한 탓에 거센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사람은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다. 서울에 진입하는 경기도 광역버스 다수는 경부고속도로, 경인고속도로, 동부간선도로, 올림픽대로, 강변북로 등 자동차 전용도로를 지나는데, 이들 모두 입석 금지 대상이다.
이런 광역버스는 정류장 몇 개만 들르고,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들어간다. 이번 규제로 대부분 38~45인승인 광역버스는 좌석이 모두 채워지면 다음 정류소에서 버스를 타려는 승객이 있어도 정류장에 정차할 수 없다. 차고지와 가까운 곳에 사는 승객들은 별 불편함이 없지만, 고속도로 진입 직전 정류장에서 타는 승객들은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2009년 GRI(경기개발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출근 첨두시간대 수도권 광역버스 이용자의 10% 가까이는 서서 간다. 규제 시행 전에 이들을 위한 대책이 필요했지만, 안전에만 힘쓴 나머지 별 다른 대책이 없었다. 각 지자체별로 운수회사와 합의해 증차를 하기도 했지만, 버스 한 대에 더 많은 승객을 태울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운수회사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요구다.
그 동안 고속도로 입석 승차가 불법임에도 계속된 이유는 운수회사, 승객, 지자체 모두 이 규제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수 회사는 입석으로 한 대당 운송 수익이 늘어나니 당연히 좋고, 승객들 또한 빨리 갈 수만 있다면 서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지자체는 버스 대수가 늘어나면 교통 혼잡을 유발하니 굳이 규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때문에 이번 규제가 승객들에게 갑작스러움으로 느껴진 건 당연했다. 시민들의 안전불감증 탓으로 돌리기엔 사전에 충분한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국토부는 이전에도 한 버스 회사와 협의해 입석 금지를 실험했지만 큰 반발에 부딪혀 포기한 적이 있다. 또 다시 시행하는 걸 보니 정부는 이정도 반발은 국민 안전을 위해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승객과 버스회사, 지차체의 이익을 모두 침해하면서까지 시행하는 규제라면, 그만큼 돈을 들여야 하는 게 맞다. 정부는 '안전은 생명과 직결되어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도, 돈을 들여 피해를 최소화할 대책을 마련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안전에는 돈이 필요하다.
승객 안전 중요하지만... 꼭 따져봐야 할 4가지
이번 규제 논란에서 주목해야 할 쟁점을 크게 네 가지로 생각해봤다.
[쟁점① : 지자체와 운수회사의 이해 관계]
가장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행 제도상 버스 운행은 해당 노선을 지나는 지자체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수요에 따라 증차하고 노선을 신설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서울시는 그 동안 교통 혼잡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경기도 버스가 서울 안으로 들어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서울은 출퇴근 인구 증가에 따른 광역버스 증차, 노선 신설 신청 등을 종종 거부해 왔다. 2011년에 발표된 GRI(경기개발연구원)의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는 경기도가 요청한 노선 변경·증차 요구의 약 65%를 거부했다. 이로 인해 경기도 광역버스는 강남, 사당, 서울역, 강변역 등 서울 시내에 허용된 몇몇 거점에만 정차하게 됐다. 노선이 다양해지지 못하고, 증차도 어려워지면서 버스 혼잡도는 더욱 심해졌다.
수도권과 서울을 오가는 노선은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제 3의 기관에서 관리해야 한다. 서울을 지나는 모든 버스를 서울시가 규제하는 건 올바르지 않다. 서울시가 규제하려는 버스의 승객 대부분이 경기도 주민이기 때문이다.
실례로 2008년 국토교통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지자체의 규제도 받지 않고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광역버스인 'M버스'를 만들었다. 좌석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운수 회사에서는 수익성이 낮다며 다소 꺼리는 입장이지만, 버스 혼잡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번 규제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노선 신설과 증차가 불가피하다. 이를 위해서 서울시와 경기도, 그리고 운수회사 사이에 얽혀있는 이해관계를 정부가 나서서 조율해야 한다. 버스 노선을 허가해주는 체계를 다시 정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 국토교통부가 직접 버스 노선을 관리할 수도 있다. 물론, 이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버스 증차에 따르는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하느냐이다.
[쟁점② : 광역버스에 대한 당국의 이해 부족]
수도권 광역 버스는 정류장 몇 개만 들르고 고속도로에 진입해 서울 시내 거점에서 회차한다. 때문에 고속도로 진입 직전에 있는 정류장에서는 지나가는 버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런 운행 특성상 입석 규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노선을 무조건 증차하기 보다 증차와 더불어 노선을 다양화하는 게 필요하다. 중간 정류장에서 빈 차로 운행을 시작하는 노선을 만들거나, 기점을 여러군데로 바꾸는 방법도 있다. 이렇게 정류장 간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운행하면 운수회사의 이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해당 노선을 관할하는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안타까운 점은 각 지자체가 버스 몇 대를 증·감차를 했을 뿐 융통성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자체와 정부가 노선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쟁점③ : 왜 수도권 광역버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