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7.30 동작을 전략공천 발표 직후 장고를 거듭해 온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오른쪽)이 지난 8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전략공천 수락' 입장을 표명하자,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이 난입해 강력 항의하고 있다.
남소연
벌써 세 번째다. 야당이 '공천 자살골'로 유리한 선거를 망쳐 놓은 게.
2010년 7·28 재보선, 2012년 총선이 그랬다. 2014년 7·30 재보선은 그 중 최악이다. 모두가 시대적·국민적 요구와 가치·노선·비전 등 대의명분에 충실하지 않고, 원칙과 기준없이 자기 사람 심기식 '계파 공천'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2016년 총선까지 망치지 않으려면, 그동안 공천 잘못으로 유리한 선거를 패배하게 만든 세력의 대표주자들과 그 수혜자들이 또다시 당권을 쥐락펴락하지 못 하도록 하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7·30 재보선, 기동민 전략공천 이전과 이후7·30 재보선은 기동민 동작을 전략공천 이전과 이후로 정확히 구분된다. 선거 판세가 180도 돌변했다.
불과 10여 일 전. 기동민 동작을 전략공천 사태 직전만 해도 새누리당은 영남을 제외하고 전패 위기감이 돌았다. 세월호 참사와 총리 인사 참극 등 박근혜 정부의 연이은 실책으로 민심 이반이 컸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친박계인 새누리당 지도부가 지난 대선 경선 때 박근혜 대통령의 가족·사생활까지 집요하게 공격하며 저격수 역할을 했던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에게 "제발 동작을에 출마해달라"며 '십고초려'를 할 정도였다. 재보선 참패에 따른 조기 레임덕 침몰 위기에서 대통령을 구해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이제는 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가 앓는 소리를 한다. 10대 5로 이길 수 있는 판을 공천 참사로 망쳐 놓더니 이제는 5:10으로 져도 '잘한 선거'라고 말한다. 공식 선거운동 시작을 하루 앞둔 지난 16일. 모 언론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수도권과 충청권 9곳 중 경기 평택을 1곳만 빼고 나머지는 새정치연합 후보가 모두 뒤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아직 초반이지만 충격파가 간단치 않다.
박근혜 정부 '인사 참사' 심판이어야 할 선거가 새정치민주연합의 '공천 참사' 심판 구도로 바뀐 것이다. 국민들 보기에는 '박근혜 정부도 오만·무능하지만, 새정치연합도 오만·무능하긴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안철수·김한길 지도부의 선거 전략 실패와 공천 패착이 1차 원인이다. 거기에다 자칭 '미래세력'이라는 486 정치인들의 권력 싸움을 연상케 하는 기자회견 아수라장이 하루 종일 방송을 타면서 국민 여론이 크게 돌아서 버렸다.
어중간한 지도부가 더 위험하다야당. 대체 왜 이럴까. 번번이 이러기도 정말 쉽지 않다. 이제는 '계파 공천' 하나만으로는 그 원인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당의 노선과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게 더 근본적인 이유이다.
안철수·김한길 지도부의 행보를 보면서, 철학과 노선이 불분명한 지도부가 민주진보 야당에 얼마나 위험한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김한길 대표는 지난 4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도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미국 타이타닉호 침몰 사태와 그 이후 '부자증세'를 담은 수정헌법 16조의 탄생을 예로 들었다.
그런데 김 대표는 바로 전날 부자증세를 가장 앞장서 주창했던 정동영 상임고문을 공천에서 배제하기 위해 광주 광산을에서 사무실까지 열고 선거운동을 하던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비밀작전하듯 서울로 끌어다 동작을에 내리꽂았다. 결국 이것이 공천 참사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안철수·김한길 대표는 기동민 등 486 후보들을 '미래 세력의 상징'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하지만 이번 공천 과정에서 486이 보여준 민낯은 더 이상 봐주기 민망할 정도로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기득권화, 권력지향, 계파주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계파주의 민낯' 드러난 486실제로 486 의원들은 민평련계와 친노계로 나뉘어서 개개인의 공천에 대해 일일이 즉각적으로 집단 성명을 냈다. 지원사격의 대상이 자기 편이냐 아니냐에 따라 성명서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리기도 하고 빠지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개개인의 공천에 대해 반대와 지지의 연판장을 돌리는 것도 초유의 일이다.
당의 보수화에 맞서야 할 486이 당내 몇 안되는 진보개혁파의 상징적 인물들을 '올드보이'로 규정하고 공천 배제를 앞장서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이 내년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속한 계파가 당권을 잡기 위해서는 우선 호남·진보개혁 상징적 인물들의 원내 진입을 막아야 한다는 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안철수·김한길 지도부와 486이 합작해 자기 사람 심기식 계파 공천으로 흘러가버렸고, 결과적으로 정동영·천정배·김상곤 등 진보개혁 3인방을 모두 배제해 버린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벌어졌다. 출마하지 않겠다는 권은희씨를 무리하게 광주 광산을에 내리꽂아 진정성 논란을 일으키고, 호남 이외의 지역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준 것도 다 이런 연장선에서 벌어진 일이다.
결국 486에게도 노선은 없었다. 야당의 기득권 중심부에 진입하면서 진보개혁과 학생운동 시절의 치열함이 사라진 지도 너무 오래됐다. 기성정당인 야당 정치에 입문한 시기도 486이나 정동영·천정배나 2~3년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486 선두 주자인 이인영 의원과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1999년에 김대중 총재가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우상호 의원은 1998년 새정치국민회의 고건 서울시장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으로 활약하면서 야당 정치에 뛰어들었다. 정동영 상임고문과 천정배 전 의원은 1996년 김대중 총재가 총선을 앞두고 영입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야당에 몸담았다.
그 긴 세월 동안 486이 기성 정치권에서 보여준 게 뭐냐는 질타도 수없이 이어져 왔다. 본인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뻔뻔하다. 자신들을 미래세력이라고 칭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진보개혁파 선배 정치인을 올드보이라고 말할 처지도 못 된다는 걸 그들만 모른다.
잡아야 할 발목 안 잡고,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새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