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포스터. 집권여당 소속 정치인 프랭크 언더우드(캐빈 스페이시)는 손에 피를 잔뜩 묻힌 채로 권좌에 앉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마치 권력의 정점에 앉기 위해 수많은 암투와 희생을 치른 상태를 암시하듯이.
넷플릭스
정치 스릴러를 장르로 한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는 미국의 워싱턴 정가를 배경으로 한다. 백악관과 국회를 분주히 오가며 고군분투하는 민주당 소속 정치인 프랭크 언더우드(케빈 스페이시)가 주인공이고, 그를 둘러싼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 로비스트와 시민들이 등장한다.
서로 얽히고설킨 관계가 언뜻 복잡해 보이지만, 정작 등장인물인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단순하다. 그들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내 편'과 '적', 그리고 언제든지 이용 가능한 '잠재적 우호관계'로 간편하게 나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자의 이권을 위해 두뇌 싸움을 벌이고, 함정을 파고, 궁지에 몰리면 가차없이 상대를 배신하고 뒤통수를 친다. 곁에 있을 때는 함께 웃고 악수를 나누며 '의리'를 외치지만, 뒤돌아서면 조롱과 비수를 준비하고서 빈틈을 노린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정치판은 한 치의 어설픈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야생의 초원같은 공간이다. 상대를 잡아먹지 않으면 곧 먹히는 먹이사슬이 유일한 법체계인 세계다.
첫 번째 시즌은 새로운 민주당 대통령의 임기와 함께 시작한다. 대통령의 당선을 곁에서 도왔던 프랭크는 선거캠프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국무부장관 임명을 약속 받았다. 그러나 집권 이후 대통령이 이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고 하면서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된다. 결국 프랭크는 피의 복수를 다짐한다. 자신의 지략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대통령을 비롯한 주변인물을 차례로 하나씩 공략하면서 끌어내리기로 계획하고 이를 실행한다.
이 과정에서 제각각의 야심을 채우려는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충족하고자 뛰어든다. 프랭크는 이들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속을 꿰뚫고 이용한다. 돈이든 정보든, 적절하게 원하는 것을 채워주는 듯하다가 이내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폐기처분한다.
그 무엇도 프랭크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그의 손에는 피가 잔뜩 묻어있을지언정, 자신의 등뒤에 칼을 꽂으려는 사람은 결코 성하게 내버려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근엄한 분위기로 권좌에 앉은 프랭크의 모습이 담긴 드라마의 포스터는 등장인물의 성격과 관계를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해 놓은 듯하다.
정치판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하우스 오브 카드><뉴스룸> 시리즈를 제작한 아론 소킨의 <웨스트 윙(1999~2006)>을 기억하는가? 총 7시즌까지 제작된 이 드라마는 백악관의 대통령과 참모진이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며 탁월한 팀플레이로 멋지게 국정을 운영하는 과정을 담았다. 정권의 안위보다 국가와 국민을 더 중요하게 여기면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이는 마치 '우리가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브라운관에 그려내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하우스 오브 카드>는 다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카드로 만든 집에서 서로가 '신의 한 수'를 쥐고 있다고 여기며 각자의 숨통을 노리는 모양새가 드라마의 핵심이다. 주인공 프랭크를 비롯한 드라마 속의 많은 정치인과 언론인에게 '진실'과 '정의'는 선거철에 꺼내드는 피켓에나 쓸 정도의 유용함을 지닌 단어에 불과하다.
모두가 점잖게 정장을 입고 근엄한 표정으로 침착한 척 하지만, 사실은 타인을 짓누르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발버둥치는 아비규환일 뿐이다. <웨스트 윙>과는 정반대로, <하우스 오브 카드>는 우리가 애써 눈돌려 외면하던 정치판의 잔인한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셈이다. 드라마의 포스터에 그려진 '거꾸로 뒤집힌 미국 국기'처럼, 마치 실제 정치판은 우리의 기대와는 정반대라는 듯이.
유권자의 애타는 민심? 권력의 정점에 오른 프랭크는 애초에 그런 것 따위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냉소하며 무시한다. 다만 언론의 카메라가 비추고 누군가가 지켜보는 앞에서는 인자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공감하는 척 할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뉴스에 나오고 이미지가 지켜지니, 20년째 정당에서 굵직한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며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다. '정치, 그거 알고 보면 참 별 거 아니다'하는 식이랄까.
프랭크는 체스판에서 말을 옮기듯이 인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누가 희생되더라도 아무런 미련없이 털고 다음 수를 계산한다. '정치 스릴러'라는 장르명이 아깝지 않다. 이런 인물이 정치판에서 국가의 앞날을 좌우할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니, 상상만으로도 무서울 지경이다.
한국 정치 현실은 위태로운 '하우스 오브 수첩'오바마 대통령은 IT기업 대표단을 만나는 공식석상에서 "실제 백악관도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처럼 무자비하지만 효율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주인공이 보여주는 화끈하고 뒤끝 없는 일처리는 일견 한 나라의 대통령마저 감탄하게 만들 정도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정작 <하우스 오브 카드>의 현실화가 필요한 것은 미국의 백악관이 아니라 한국의 청와대인지도 모른다. 임기가 시작되고 2년도 채 되지 않아 레임덕이 거론될 정도로 지지율이 흔들리는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 드라마 속의 정치판보다 더 처참하다. 정책적 무능과 불통의 수첩인사가 정권의 국정 지지도를 깎아내리는 악재를 불러왔고, '프랭크 언더우드' 없이도 이미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