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망초를 비롯한 풀꽃들이 가득 피어있는 참판댁 마당.
김현자
외암마을에서 만난 나무들도 인상 깊다. 소나무의 거북무늬는 100년 이상 자란 나무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마을입구와 마을을 약간 벗어난 듯 마을에서 좀 떨어진 곳, 이렇게 두 곳 숲에 거북무늬의 소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원두막(정자)에 올라가 앉아 있었더니 얼마 되지 않아 옷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흘렀다.
소나무 숲들도 좋지만, 마을을 돌다보면 600년 된 느티나무(보호수다)를 비롯하여 마을 곳곳에 은행나무와 호두나무, 향나무 등 굵은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서 나무들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무가 많아 초가지붕이 겨우 보이기도 했다. 외암마을의 이와 같은 나무와 숲들은 그 가치를 인정,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마을숲 대상(2001년, 제2회)을 받기도 했다.
건재고택(중요민속자료 제233호)을 비롯하여 감찰댁과 교수댁 등과 같은 양반집들에는 멋있는 나무들이 많아 보였다. 이들 가옥들은 정원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추사 김정희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다는 건재고택의 정원은 명품정원으로 손꼽힌다. 그런데 아쉽게도 2014년 7월 현재 건재고택을 비롯한 여러 기와집들이 출입 금지라 정원도 나무도 볼 수 없다.
덧붙이면, 건재고택은 몇 년 전의 자살 및 도박, 경매사건 이후 현재까지 예금공사가 관리하고 있다. 고택의 정원을 구경하는 등과 같은 특별한 목적이 있으면 예금공사에 사전 문의, 개방을 허락받으면 출입할 수 있단다. 건재고택을 관리하는 마을 사람의 말에 의하면 말이다. 하루 빨리 어떤 결론이 나 건재고택을 비롯한 이들 고택들이 제대로 관리되고, 그래서 명품으로 손꼽히는 이들 가옥들의 정원을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
"담장 가까이 있는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마음 편해요. 꽃도 손닿는 곳에 있는 것은 따가거나, 줄기를 꺾어 가요. 저것도(다육식물 화분을 가리키며)도 얼마나 꺾어 갔는지 형편없었어요. 많이 자라 이제 좀 봐줄 만한 거예요. 못 말려요. 손님하고 이야기 나누는 그 잠깐 사이에 꺾어 가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어떤 집에서 마을 주민과 이야길 나누고 있는데 아직 익지도 않은 호두를 따더니 잠시 만지작거리다 툭 버리고 가는 사람이 보였다. 그걸 보는 순간 골목을 걸으며 나뭇가지나 꽃이 꺾어진 채로 뒹굴던 것이 생각나 물어보니 이처럼 말한다. 씁쓸하게 웃으며 말이다.
그 집 주인의 그 말은 맞아 보였다. 이야기 나누는 중에 한 여자가 다육식물 화분을 가리키며 "조금 따가도 되죠?"라고 묻더니 주인의 거절에도 몇 차례 더 같은 말을 했으니 말이다. 주인의 사정이 곤란해 보여 "꽃집에 가면 3,4000원이면 작은 화분 하나 살 수 있어요"라고 거들었다. 그래도 그 여자는 막무가내로 몇 번 더 애원해보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마을 구경을 끝내고 가옥들을 조성해 놓은 곳을 구경하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담장 곁에 핀 봉숭아꽃 앞으로 걸어가더니 봉숭아꽃을 뚝뚝 따기 시작했다. 그 여자에게 한마디 했더니 "어차피 질 꽃인데 따서 물들이는 게 낫지, 좀 따면 어떻다고 그러냐?"며 도리어 큰소리로 불쾌해했다. 한마디 더했다간 다툼이 될 것 같아 그냥 돌아섰지만 씁쓸했다.
점심은 홍경래의 난을 진압했다는 이용현(1783~1865)과 관계있다는 신창댁에서 먹었다. 주인에 의하면 마을에서 유일한 밥집이란다. 청국장을 시켜 먹었는데, 콩 건더기가 풍성한데다 짜지 않고 구수해 좋았다. 아마도 심어 가꾼 것들로만 만들었을 반찬들도 달지 않았고, 화학조미료가 느껴지지 않아 기억에 남을 밥상이었다. 밥값은 2인분에 1만 원이었다.
외암마을에 예정보다 오래 머물렀다. 오전 10시 무렵에 도착해 오후 5시 십분 전쯤까지 있었으니 대략 7시간 가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도 아쉬워 집에 돌아와 외암민속마을을 다녀왔다는 사람들의 블로그 글들을 보니 미처 보지 못한 집이나 풍경들이 많아 아쉬움이 크게 남고 있다. 딴에는 제대로 돌아보자 여유를 가지고 돌았는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