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아버지 사진. 매우 미남이라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김준수
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아버지를 찾아다녔다. 침대에 누운 피투성이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빠르게 훑으면서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얼른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아무리 봐도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심장 뛰는 소리와 함께 불안함이 더 커져갔다. 그리고 멀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이동식 침대 하나를 목격했다. 그 위에 누운 사람의 모습이 슬프게도 낯이 익었다. 바로 아버지였다.
"아버지!"그야말로 드라마의 한 장면같은 순간이었다. 내가 응급실에 막 도착한 순간에 아버지는 수술실로 향하다니. 내가 이런 상황을 겪게 될 줄은 미처 생각해 보지도 못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엘레베이터를 멈춰세우고 달려가서 아버지의 손을 감싸쥐었다. 맞잡은 손이 아직 따스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놀랬제? 큰 수술 아닐끼다. 괜찮으니까 걱정말그라."내가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내게 걱정말라고 다독였다. 내가 아버지에게 하려던, 그리고 해야 할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대답할 틈도 없이 의료진은 "수술이 급합니다"라고 말하며 수술실로 아버지를 데리고 갔다. 멍한 표정의 나를 세워두고 엘리베이터 문이 굳게 닫혔다.
3층의 수술실 앞을 찾아가니 수술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대형 벽걸이 TV옆에 걸린 모니터에 '수술중' 환자 목록에 아버지 이름이 보였다. 모니터 오른쪽의 '회복중' 목록에 아버지의 이름이 옮겨지기 전까지, 수술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아버지가 무사하기를 빌었다. 두 시간이 이틀처럼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수술이 끝나고 아버지가 병실로 옮겨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의 입원 수속을 밟고 신경외과 병동으로 따라올라간 나는 병실 안의 분위기에 기가 눌렸다. 모두 머리에 큰 흉터를 새기고서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환자는 머리를 다쳐서 간호사가 몇 번을 물어봐도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른 침대에선 사고를 당한 듯 보이는 중년 남성이 난데없이 허공에 욕을 하며 마늘을 마저 팔러 가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선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성이 "마늘은 이제 다 팔았잖아. 정신 좀 차려, 제발"하고 흐느끼며 울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의식이 돌아왔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 그 모습이 병실의 주변 풍경과 묘하게 조화되기 시작했다. '설마 아버지도 이제 거동을 못하고 기억을 잃게 되는 건가' 하는 걱정이 삼켰던 울음과 함께 터져나올 것 같았다. 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발, 제발 최악의 상태만은 아니어야 한다고 속으로 계속 되뇌이며 아버지의 시야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순간, 초점 없는 눈동자가 내 쪽으로 움직였다.
4일 만에 퇴원한 아버지"수술은 내일 아침에 하려나 보다…?"깨어난 아버지가 멍한 표정으로 내게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나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웃으면서 "아니에요, 수술 잘 끝났어요"하고 대답했다. 아버지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이 "벌써?"하고 되물었다.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 전과 다름 없었다. 수술이 끝난지도 모르는 아버지에게 무사히 잘 끝났다고 대답하면서 나는 그제서야 조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날 밤부터 나는 병실에서 아버지의 곁을 지키며 간호를 시작했다. 수술하느라 삽입해 놓은 배변통을 비우고, 아버지가 목마르다고 하시면 물을 떠다 드렸다. 식사 시간엔 밥을 가져와서 먹을 수 있도록 해드렸고, 다 드시면 빈 그릇을 치우는 일도 내 몫이었다. 아버지가 화장실에 갈 때 부축하고 수액이 주렁주렁 달린 수액걸이를 끌고 다니는 것도 내가 맡아서 했다.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순간에 잘 대처하려고 하다 보니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다만 밤마다 아버지를 먼저 재우고 조그마한 보호자용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누울 때면, 아버지가 어린 나를 키우면서 겪었을 이런저런 일들이 떠올라서 괜히 가슴 한편이 찡해지곤 했다. 나는 고작 며칠 병수발을 했을 뿐인데, 아버지는 나를 보살피느라 이런 고생을 수십 년간 해오셨을 터였다.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내가 평생 옆에서 지켜본 아버지는, 늘 자상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나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 안경 가게 일을 하시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그랬다. 그래서 늘 인자한 웃음을 띠고 살아오셨기에 얼굴에 패인 주름이 근사하다고 느껴진 적도 있다. 내가 바보같이 착하다는 소릴 들었던 것도, 돌이켜보면 고지식할 정도로 정직하다는 평을 주위에서 듣는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버지는 병원에 일찍 이송된 덕분에 수술 후 경과가 매우 좋았다. 머릿속에 고인 피를 빼내느라 삽입해 놓은 실리콘 튜브로 이틀 동안 100ml 이상의 혈액이 제거됐다. 혈색도 더 좋아졌고 그동안 아버지를 괴롭혔던 두통도 사라졌다. 무엇보다도 뇌출혈로 수술을 했는데도 혼자서 화장실을 다닐 정도로 몸상태가 좋았고 기억상실이나 언어장애같은 문제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기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다행스러운 회복력이었다. 덕분에 아버지는 월요일인 7일에 퇴원할 수 있었다.
아버지, 이젠 아프지 말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