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 1㎦에 44kg의 금이?... 지구 이야기 놀랍네

[서평] 로버트 M. 헤이즌의 <지구 이야기>

등록 2014.07.07 16:45수정 2014.07.0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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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구이야기> 책표지.

<지구이야기> 책표지. ⓒ 뿌리와이파리

6500만 년 전,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들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소행설 충돌설, 화산 대폭발설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그 원인으로 제기되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원인 가설은 소행성 충돌설이다. 이 시기 공룡들을 몰살한 소행성은 폭이 약 10킬로미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흔히 소행성은 지구의 '잠재적 살인자'로 불린다. 16킬로미터짜리 소행성은 어디를 때리든 지구 전체를 황폐화시킨다. 대양에 부딪친 16킬로미터짜리 소행성은 엄청난 파도를 만들어내 지구 최고봉들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말끔히 쓸어버린다. 해수면 위로 수백 미터까지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한다.


소행성 가운데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적어도 300개 정도다. 다음 수십 년 안에 그중 일부가 지구 가까이를 지날 것이라고 한다. 이미 2004년 9월 29일에 가로 3킬로미터, 세로 6킬로미터의 길쭉한 천체인 투타티스(Toutatis)가 지구를 스쳐 지나갔다.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두세 배보다 훨씬 짧은 거리에서였다.

2029년에는 지름 270미터짜리 소행성 아포피스 기다려...

2029년에는 지름 270미터짜리 소행성 아포피스(Apophis)가 기다리고 있다. 아포피스는 투타티스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달 궤도 안쪽으로 쑥 들어와 지구 근처를 가로지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달 궤도 안쪽으로 들어온 아포피스는 지구의 힘에 이끌릴 가능성이 높다. 궤도가 바뀐 채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책 마지막 장에 있는 지구의 미래 각본에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지구 이야기>는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푸는 지구의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저자에 따르면 암석은 지구 별의 탄생과 죽음, 정체와 흐름, 기원과 진화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저자는 암석이 지구사의 기록 보관 담당자라는 점을 전제로 45억 살 먹은 지구의 역사를 하나하나 풀어간다.

45억 년이나 되는 장구한 지구 역사를 300여 쪽의 책 한 권에 담는 저자의 붓끝은 경이롭기만 하다. 원자에서 시작해 광물과 암석, 생명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진화 과정을 일관된 흐름 속에서 한 편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저자는 탁월한 이야기꾼 같다. 지구는 저자의 손끝에서 드넓은 우주 무대 위에 오른 한 명의 배우가 된다.


저자가 묘사하는 지구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로 역작 <코스모스>를 남긴 칼 세이건은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에 빗댄 바 있다. 나는 이 말을, 광활한 우주 공간에서 먼지 한 톨의 존재감밖에 갖지 못하는 지구에 대한 정직한 비유로 이해한다. 그런 지구처럼, 우리는 '푸른 점' 위에서 먼지처럼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하다. <지구 이야기>가 "당신의 세계관을 바꿀 수도 있는 참으로 드문 책"이라는 한 추천인의 말이 전혀 과장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유다.

책 곳곳에는 흥미진진한 얘깃거리들이 부지기수로 담겨 있다. 밤하늘의 달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지구에서 떨어져 나갔다는 분열이론, 별개의 천체였던 조그만 달을 덩치 큰 지구가 궤도 안으로 붙잡아 들였다는 포획이론 등이 달의 생성을 설명해 왔다.


최근에는 대충돌이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저자가 대충돌이론에 따라 묘사하는 달의 탄생 과정은 한 편의 거대한 우주 쇼다. 약 45억 년 전, 검은 원시 지구와, 달을 낳은 티탄족 여신의 이름을 딴 행성 지망생 '테이아'가 있었다. 테이아는 크기가 화성의 두세 배, 질량은 지구의 3분의 1 정도였다. 둘은 태양계가 소유한 땅의 가느다란 띠 하나(궤도-기자 주)를 놓고 다투었다.

그런 어느 날 테이아가 지구 옆구리에 충돌했다. 단 한 번의, 또 다른 각본에 따르면 두 번의 충돌에 의한 거대한 격변이 테이아를 완전히 괴멸시켰다. 테이아의 파편들 일부는 깊은 우주 속으로 사라졌다. 또 다른 일부는, 테이아의 충격으로 솟구쳐 오른 지구의 지각과 맨틀 파편들과 함께 섞였다. 이들은 가라앉으면서 지구를 위해 더 큰 새로운 중심핵을 형성했다.

그러나 테이아의 모든 것이 지구에 붙들린 건 아니었다. 지구는 궤도 위 더 높은 공간에 막대하게 쌓은 암석 충돌의 파편들로 둘러싸였다. 파편은 대부분 두 행성의 맨틀이 잘 섞인 혼합물이었다. 식어가는 암석 방울들이 한데 달라붙으면서, 더 큰 덩어리가 더 작은 덩어리들을 쓸어모았다. 말하자면 태양계에서 초기 행성들이 형성되었던 것처럼 중력에 의한 응집이 순간적으로 재연되면서, 달이 급속히 합체되고 2, 3년 만에 현재의 크기에 어느 정도 근접했을 것이다. (58~59쪽)

대충돌 이론에 따르자면 현재의 달과 지구는 테이아를 매개로 새롭게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와 다름없다.

저자는 테이아와 지구의 충돌이 변칙적으로 23도 기울어진 지구 축을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금성이 다른 행성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자전하고, 천왕성이 누워 돌게 된 까닭 역시 천체들 간의 거대한 충돌로 인한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 또한 흥미롭기만 하다.

최초 형성기의 달은 지구 표면에서 겨우 2만 4000킬로미터 높이에 있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 워싱턴에서 호주 멜버른까지의 비행거리와 별 차이가 없는 거리다. 오늘날의 달은 지구 표면에서 38만 5000킬로미터 밖에 있다고 한다. 지구에서 한참 멀어져 간 것이다. 덩치 큰 달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아폴로호 우주비행사들은 달 표면에 반짝이는 거울을 남겼다. 지구에서 쏜 레이저 광선이 그 거울에 맞고 튀어나와 가르쳐주는 지구와 달 사이의 거리 측정치는 단 1밀리미터도 틀리지 않는다. 1970년대 초부터 해마다, 달은 일 년에 평균 3.82센티미터씩 멀어져갔다. (61쪽)

현재 속도로 환산하면 4000년마다 1마일(1.605킬로미터) 멀어지는 거리라고 한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는 아주 먼 훗날 언젠가 밤하늘에서 둥근 쟁반 모양의 달을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반대로 저 먼 옛날의 밤하늘에는, 우리 눈을 압도하는 거인 같은 모습의 달이 지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산소에 대한 이야기도 경이롭다. 오늘날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는 산소는 지구 대기의 21퍼센트가량을 차지한다. 과거 어느 한 때는 30퍼센트를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소한 처음 20억 년 동안의 지구 대기에는 산소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도 지구 산소의 99.9999퍼센트는 암석과 광물 안에 섞여 있다. 수많은 지구 생명체는 단 0.0001퍼센트의 산소로 살아가는 셈이다. 놀랍지 않은가.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 또한 지구 역사 이야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주인공이다. 저자는 검은 지구를 파랗게 만든 주전 선수 넷(질소, 탄소, 황, 물) 중 물이 늘 지구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말한다. 다른 화학물질을 녹여 옮기는 독보적인 능력 덕분이다.

잘 알다시피 물은 수소와 산소가 2 대 1로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진 물 분자는 극성을 띠면서 뛰어난 용매로 작용하는 성질을 갖는다. 소금, 설탕 등 많은 성분이 물에 빠르게 녹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양에는 거의 모든 화학원소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저자는 물의 이런 특성을 생명의 근원이 되는 배경으로 이해한다.

생명의 근원으로서뿐만이 아니다. 눈이 휘둥그레질만한 '특급정보' 하나를 알려 드리겠다. 바닷물 1세제곱킬로미터마다에는 약 44킬로그램의 금이 녹아 있다고 한다. '금 바다'다. 최근 상한가로 1000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양이라니 구미가 당기지 않는가. 다만 아쉬운 점은 당신 손에 효율적인 금 추출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말 그대로의 일확천금도 논리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저자는 <지구 이야기>의 마지막을 지구의 묵시록적인 미래를 암시하면서 끝맺는다. '온난화: 다음 100년'으로 제목을 붙인 마지막 절은 지구에서 '가장 위험에 처한 종족'인 인간의 오만과 탐욕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56만 세기 전 당시 지구상의 수천 종이 갑자기 사라져버린 팔레오세-에오세 최고온기(Paleocene-Eocene Thermal Maximum, 줄여서 'PETM'으로 불림)가 있었다. PETM은 1000년 이상 지속된 지구 온난화를 유발했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그 시기는 지구사 전체에서 가장 급속한 기후붕괴기였으며, 대기의 변화 강도가 가장 큰 때였다.

그런데 최근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고 한다. PETM의 전 구간을 보존하고 있는 노르웨이의 시추심 분석 결과, 오늘날 인류가 만들어내고 있는 대기 변화가 PETM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지구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저자에 의하면 PETM 멸종 각본이 실연되는 동안 대기 조성과 평균 온도가 전 지구적으로 변하기까지는 1000년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은 엄청난 양의 고탄소 연료를 불태우며 그 기간을 겨우 지난 100년 만에 뛰어넘었다.

우리 인간에게는 정나미 떨어지는 잠재력이 있다. 자신의 무분별한 행위를 통해서든 아니면 똑같이 무분별한 무위를 통해서든, 스스로에게 막대한 고통과 파괴를 듬뿍 선사할 수 있는 잠재력. 우리가 우리의 고향 세계-칼 세이건을 인용하자면, 우리의 '창백한 푸른 점'-를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변질시키는 동안,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은 슬금슬금 흘러가버린다. (326쪽)

지구는 살아 있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끓어 넘치거나 터져 오르는 사나운 별이다. 침묵하지 않는 그 광포한 지구야말로 오만하고 탐욕에 물든 인간에게 주는 신의 교훈이 아닐까.

저자는 지구가 존재한 기간의 99.9퍼센트가 넘는 시간 동안 인간은 꼬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행성의 역사에서 눈 깜박임 한 번에 지나지 않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말이다. 지구가 온몸으로 보여주는 신의 교훈을 우리 인간이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지구는 미련한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지구 이야기: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푸는 지구의 역사>(로버트 M. 헤이즌 지음, 김미선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4. 6. 10. / 358쪽 / 22,000원)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지구 이야기 -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푸는 지구의 역사

로버트 M. 헤이즌 지음, 김미선 옮김,
뿌리와이파리, 2014


#<지구 이야기> #로버트 M. 헤이즌 지음 #김미선 옮김 #뿌리와이파리 #공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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