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동의 특징을 살려 허리우드 극장이 허리우드 클래식으로 다시 살아났다.
김종성
그런 화려한 역사를 지닌 낙원상가는 현재 서울 시민들에게 악기상가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주머니가 팍팍한 어르신들도 2000원이면 국내외 추억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실버 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과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지하 마트인 낙원시장이 사라지지 않고 당당히 있다는 것을 아는 시민들은 드문 것 같다.
1969년 문을 연 '허리우드 극장'은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과 함께 종로 극장가를 대표하는 극장이었다. 하지만 대형 복합상영관이 생긴 1990년대부터 위기를 겪었다. 단성사는 문을 닫고 피카디리는 재건축을 통해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변신했다. 허리우드는 스크린 3개를 갖춘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명맥만 유지했다.
이런 '한물간' 극장의 잠재력에 주목한 이는 김은주(41) 대표다. 그는 근처에 인사동, 탑골공원 등 노인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고, 많은 사람의 생각 속에 '허리우드'란 추억이 남아 있다는 것에 집중했다. 그는 매달 1000만 원씩 SK케미컬의 지원을 받아 허리우드 극장을 2009년 실버 영화관으로 새로이 단장해 문을 열었다. 같은 해 극장 가운데 최초로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 인증도 받았다. 정식 법인명은 '추억을 파는 극장'.
사회적 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서울시는 2010년부터 유한킴벌리는 2012년부터 지원에 동참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지원 제도로 15명의 노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현재 극장안내, 매표소 직원, 영업, 영사기사 등 직원들 대부분이 65세 이상의 노인다. 모두 정규직으로 매일 8시간씩 극장에서 근무하고 한 달에 100만~150만 원 가량을 월급으로 받는다.
극장의 취지와 기획은 좋았으나 초기엔 손님이 늘지 않았다. 매달 적자가 2000만 원씩 났다. 김 대표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차를 팔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그동안 해오던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눈높이를 어르신들께 맞추기 시작했다. 영화 상영 전엔 직접 나가 인사를 하고 '실버 영화관'을 소개했다. 컴컴한 극장 통로엔 어르신들이 언제든 붙잡고 일어설 수 있게 봉을 설치했다.
옛 영화들이라 잘 안보이던 자막을 맨 뒷자리에서도 잘 보이도록 새롭게 만들고, 고르지 않던 음향도 잘 들리도록 작업을 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어르신들을 감안해 극장에 음식도 들여올 수 있게 했다. 입소문이 나자 관객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관람료가 싸다고 영화까지 '싸구려'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 상영되는 작품은 김은주 대표가 하나하나 정성을 기울여 선정한 고전 명작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