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국토대장정에 도전하는 대학생들의 동기는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처음으로 순수한 의도로 도전한 활동이었다.
채상희
아무리 스펙을 먹고 마셔도 그 허기와 갈증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되돌아보는 경험이 있다. 지난 2012년에 떠났던 국토대장정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은 속담이 아니라 취업시장의 전제다. 나 스스로 고생했음을 보여줘야만 취업의 문턱을 뚫을 수 있다. 하지만 처음으로 정말 고생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고 싶어서 객기를 부려봤다. '청춘'이라는 말이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 두 글자에 설렜다.
덕분에 작열하는 태양빛에 검게 그을리고, 양 발은 물집으로 뒤덮여 낑낑댔다. 625km를 온전한 내 두 발로 걸었던 23일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행동이 나중에 써 먹기 좋은 스펙이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가야할 인생의 길을 알지 못하고 있었고, 아직도 내 도화지에 어울리는 색을 찾지 못했기에 무작정 걷고 싶었다.
국토대장정이 끝났을 때, 수료증이나 단체사진이 담아내지 못하는 무언가가 가슴에 남았다.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다. 국토대장정 이후의 내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것도 아니다. 여전히 나는 방학이 두렵고, 무작정 달리고 있는 주변 친구들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옥죄고 있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에도 그 때의 추억, 그 때의 뿌듯함이 나를 버티게 해주는 힘이다.
나만의 씨앗이 싹을 틔울 그날을 위해 어떤 활동으로 이번 방학을 색칠할지 여전히 고민이다. 여전히 길에 대한 확신은 없다. 내가 칠해온 색깔들이 괜찮은 선택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이제는 이득이 되는 일을 찾기보다는 경험이 되는 일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다. 국토대장정 이후 내 마음 속에 하나의 씨앗이 생겼다. 꿈·설렘·도전·열정·청춘의 씨앗이다. 앞으로 도화지에 칠할 색을 고르는 데 도움이 될 씨앗이다. 이 씨앗으로부터 새로운 색을 뽑아낼 테다.
헛된 희망에 자신을 팔아넘기지 않는 것.진정한 자신을 찾아 뿌리를 내리는 것.그대, 씨앗만은 팔지 마라- 박노해 <그대, 씨앗만은 팔지 마라> 중에서고민하는 나에게 선배가 보내준 글귀였다. 사실 공감은 잘 되지 않았다. 헛된 희망을 향해 도전해보는 것도 청춘 아닐까. 청춘은 실패해도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흔한 말을 마음 깊이 받아들고, 실천을 결심하기까지는 어려웠다. 그래도 씨앗만은 팔지 말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내가 팔지 않을 씨앗은,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그때의 경험, 그 때의 설렘이다.
마음 속으로 씨앗을 품은 채 학기보다 어렵지만, 학기보다 알찬 방학 생활을 꿈꿔본다. 오늘도 내 마음 속에는 두려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를 이겨내려고 발버둥치는 약간의 설렘도 있다. 나에게는 씨앗이 있으니까. 씨앗을 품은 채 취업 관련 사이트에 접속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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