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호수 위 두 남자꽁꽁 얼어버린 바이칼 호수에서 만난 두 남자. 한명은 이탈리아 청년이고 다른 한명은 동네꼬마이다. 국적은 서로 달랐지만 바이칼 호수의 경이로운 풍경에는 모두 동감했다.
정대희
자동차 달리는 경이로운 얼음호수... 바이칼 호수다음날 떠나는 환바이칼 열차 표를 끊기 위해 기차역에 왔다. 조용한 동네와 달리 대합실 안이 시끌벅적하다. 곧장 매표소로 걸어갔다. 이튿날 오후 1시 20분 떠나는 동네열차를 예약했다. 매표소 직원이 기차표 대신 영수증을 건넨다. 이상하다. 열차시간을 확인했다. 모스크바 시간이 아닌 현지시간이다. 요상하다. 어리둥절한 상태로 기차역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바로 바이칼 호수로 갔다.
숙소를 찾느라 잠시 잊고 있었다. 동네 구경에 깜박했다. 슬류댠카는 바이칼 호수에 근접한 마을이다. 기차역서 몇 걸음만 옮기면, 세계 최대 담수호인 '바이칼 호수'를 만날 수 있다. 그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넋이 빠져 있었다. 정신이 제자리를 찾자 마음이 들뜬다. 잰걸음으로 꿈에 그리던 바이칼 호수에 다다랐다. 그토록 그리던 호수의 모습은 상상 그 이상이다. 입 밖으로 감탄사가 저절로 튀어 나왔다. 멍하니 한동안 입을 '떡'하고 벌린 채 서 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웅장한 풍경을 마주하니 숙취가 확 풀리고 감기 기운이 뚝 떨어지는 듯하다. 경이롭다는 말밖에 딱히 표현할 길이 없는 게 아쉬울 뿐이다. 지표면과 경계가 모호한 얼음호수 위에 섰다. 손으로 눈을 치워내자 투명한 얼음이 모습을 드러낸다. 두께를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얼었다. 그 위에 서서 힘껏 뛰어올라 세차게 착지했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몇 번 더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발만 아프다.
호수 위를 걷다 저 멀리 누군가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다가가 곁에 걸터앉으며 말을 걸었다. 이탈이아에서 왔다는 그는 술병을 손에 쥐고 수평선을 지긋이 바라봤다. 나도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얼음호수를 눈에 담았다. 잠시 뒤 이번엔 동네꼬마가 다가와 의자에 걸터앉았다.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남자 셋의 침묵 감상이 시작됐다.
감상에 취해 있던 그때, 멀리서 스키를 타는 사람이 보인다. 까마득히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는 자동차가 호수 위를 달리고 있다. 곁에 있던 동네 꼬마에게 몸짓으로 물으니 아득히 멀리 떨어진 위치에 이튿날 목적지인 뽀르트바이칼이 있단다. 바이칼 호수에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모습을 뒤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다음날 여정을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했다. 돌아오는 길, 또다시 호숫가 마을과 기차역에서 유기견에게 쫓겼다. 불길한 징조였다.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처럼 그날 저녁밥은 엉망이었다. 마트서 산 냉동식품의 요리법을 몰라 정체모를 음식으로 끼니를 때웠다. 어느 때보다 맛있는 야식이 간절한 밤이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1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