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이 농성 중인 천막. 인천시 부평구 갈산동에 위치.
강선일
- 그런 힘든 순간들이 있었음에도 오랜 기간 싸워온 기록들을 보며 감명받았다. 국내외 많은 사람들의 연대도 있었고…. 좋은 기억이나 보람찬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좋은 기억은 많다. 일단 홍대 라이브 클럽을 처음 간 게 기억에 남는다. 사실 노동자들이 라이브 클럽을 간다는 건 극히 어렵다. 홍대 클럽 '빵'이란 데서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위해 인디 뮤지션들이 1주일간 헌정 콘서트를 할 때, 그때 처음으로 라이브 클럽이란 데를 가봤다. 신기했다. 한편으로 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우리 투쟁을 응원해주고 있단 사실에 놀랐다. 힘을 받기도 했고.
콜트악기 자회사인 기타넷에서 인디 밴드 갤럭시익스프레스한테 홍보대사 요청을 했었다. 밴드가 콜트 기타를 연주해주면 그들이 앨범 내는 걸 도와주는, 일종의 스폰서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갤럭시익스프레스가 사측에다가 '노동자들하고 관계가 안 좋은 걸로 아는데 해결했냐'라고 물으면서 홍보대사를 거절했다."
- 미국, 일본, 독일 등 해외 원정투쟁도 갔다 왔는데, 그때 돈이 참 많이 들었겠다. "처음엔 국내에서 후원해주고 금속노조에서도 약간의 지원을 해줘서 다녀왔다. 일본 후지락페스티벌은 주최 측 NGO 단체에서 초청을 해서 가게 됐다. 미국 철강노조에서 초청해서 미국에 간 적도 있다. 그리고 미국 남쇼(NAMM Show, 세계 최대 규모의 악기 박람회)에 우리가 못 가니까 '교민 중에서 누가 행사장 가서 1인시위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요청을 했는데, 미국 교민들이 '당사자들이 직접 와서 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겠냐'며 여비를 마련해줘서 미국에 갔다."
- 갤럭시익스프레스 외에도 국내외 유명 음악인들의 연대가 많지 않았나? 국내의 신대철, 게이트플라워즈, 해외의 RATM 등이 연대의 목소리를 낸 걸로 기억한다. "지난해 11월 1일 콜텍문화재단에서 기타 레전드'G6'라는 행사를 했다. 그때 콜트-콜텍 문제를 알고 있던 한 분이 신대철씨한테 SNS 멘션을 보내서 신대철씨가 우리 상황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난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사정을) 몰랐다. 기회가 된다면 노동자들을 위해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해서 12월에 공연이 열린 거다(관련기사 :
신대철·한상원의 손놀림... '레전드'란 이런 것).
RATM는 처음 미국 원정투쟁 갔을 때 봤다. (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가 자기 돈으로 뉴욕에서 LA까지 와서 후원공연도 해줬다. 그때가 아이티 지진 났을 때였는데, 공연 수익금을 우리한테 준 걸 우리가 안 받고 아이티 쪽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톰 모렐로가 거기에 감명을 받은 듯하다. 톰 모렐로는 2012년 노동절에 뉴욕 한복판에서 백여 명이 기타 치고 하는 자리(당시 '점령하라' 운동의 일환으로 마련된 행사)에서 콜트-콜텍 노동자들 이야기를 다시 했다고 하더라.
참 특별한 게,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투쟁 방식 아닌가? 기타를 만들던 노동자들과 그 기타를 가지고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같이 연대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부분이 특이한 투쟁이다."
- 외국에 나가서 싸우던 중, 국내에선 얼굴도 안 비치던 박영호 사장을 만나서 쫓아가 싸운 적도 있는 걸로 기억한다. 그때 무슨 얘기를 했나?"우리가 독일 갔을 때 악기 행사장 앞에서 자꾸 시끄럽게 하니까 행사 주최 측이 박영호 사장과 만남을 주선했다. 별 영양가는 없었다. 우리는 '우리 다 복직시켜라', '국내 공장 정상화 해라' 그랬는데 박영호 사장은 '이미 다 끝난 일이다. 여기서 이야기하지 마라' 이랬다.
정말 사측이 더 이상 한국에서 기타를 만들 생각이 없다면, 그러한 입장을 문서화하자는 게 우리 요구다. 그러면 우리도 미련 없이 투쟁을 정리하겠다는 거다. 그러나 회사에선 계속 피하고 있다. 정말 국내에서 기타를 만들 생각이 없다면 못 써줄 이유가 없지 않나. 그걸 안 써 준다는 건 언젠가는 다시 국내에서 기타를 생산하겠다는 뜻이다. 그들의 가장 큰 목적은 애당초 '노동조합 와해'였던 것 아닐까 의심하는 이유다."
"'콜밴' 활동은 시민들과의 약속... 즐기면서 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