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엄마에게 얻은 삼십 년이 넘은 꽃무늬 치마에 늘어진 면티, 며칠 동안 머리를 감지 못해 모자를 눌러 썼다.
김윤희
아침에 고양이 세수를 했지만 꾀죄죄한 얼굴이 민망해 창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 썼다. 친구 엄마가 처녀 시절 입던 옷이라며 준 낡은 꽃무늬 치마, 목이 늘어난 면 티, 흰 고무신. 그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랐던 것은 아닐까. 한 달이 넘도록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라면 이런 생활에 적응하는 내가 불쌍해 보였거나, 미안한 마음이 생겨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사막 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샤워기에선 물이 시원하게 뿜어져 나온다. 이렇게 물이 반가울까. 사막 한 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 들 것 같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긴 시간동안 욕실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룸메이트에게 말했지만 물을 함부로 쓸 수가 없었다. 물이 아깝다는 생각에 쓰다가도 자꾸만 수도꼭지를 잠그는 내 손을 보았다. 아무래도 빨리 샤워를 끝내야 할 것 같다. 물을 마음껏 쓰는 것은 장마가 시작돼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그 원을 푸는 수밖에 없다.
찰랑이는 머리칼, 몸도 개운하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웬만한 클래식 연주 보다 감미롭게 들렸다. 나는 룸메이트와 동생 집 옥상으로 올라갔다. 뜨거운 볕과 불어오는 바람에 빨래가 정말 잘 마를 것 같았다. 빨래를 다 널고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바람에 날리는 빨래를 보고 있자니 빨래도 나도 출세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물이 없는 와중에 씻고 더러운 때를 벗겨냈으니 출세를 한 것은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