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마지막 한명까지 찾아주세요.분향소를 나오면 가족분들의 목소리를 담은 현수막이 보인다.
서준영
시간이 애매해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단원고를 지나 건너편을 보니 버스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달려가 버스에 오르니 어머니 자원봉사자분께서 인원체크 중이셨다. 계속 진도행 버스를 맡아주고 계신 거였다. 자원봉사자 분은 반가워하시며 간식을 챙겨주시고 조심히 다녀오라며 걱정해 주셨다. 실종자 분들 모두 나오면 안산 놀러오라는 말씀도 덧붙여 주셨다.
버스는 서천과 함평 2곳의 휴게소를 거쳤음에도 낮 12시 20분쯤 진도 실내체육관에 닿았다. 오전 8시 출발이니까 생각보다는 빨리 도착한 셈이다. 실내체육관 앞에는 천막들이 많았다. 안산시 자원봉사센터와 진도군 자원봉사센터 천막이 좌, 우 첫 번째 자리에 있어서 눈에 바로 들어왔다. 안산시 자원봉사 센터로 가서 문의하니 담당자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셨다고 진도군 자원봉사센터에 일단 등록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얼른 반대쪽으로 보이는 진도센터 부스를 찾아 등록을 마쳤다. 어떤 일이든 시켜만 달라고 하자 바로 팽목항으로 이동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마침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는 셔틀버스의 출발시간이 임박해 짐을 던지듯 풀고 버스에 올랐다.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팽목항까지의 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멀었다. 편도 1차선의 시골 길을 따라 30분이나 걸리는 거리였다. 구불구불 멀게 느껴지는 이 길을 가족 분들은 매일 수차례 오고가셨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파온다.
적막했던 팽목항, 그곳에서 만난 운동화팽목항에 도착해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분명 항구라 했는데 파도가 뭍을 때리는 소리도 바다의 냄새도 그리고 시야에 들어온 많은 사람들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적막과 고요. 그것이 팽목항의 첫 인상이었다.
경찰 아저씨한테 길을 물어 진도군 봉사센터를 찾아가는 길. 기사에 첨부된 사진으로 접했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지런히 놓인 한 켤레의 운동화는 아이가 어서 돌아와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적막을 깨는 목탁소리가 울렸다.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을 올려놓고 기도를 하는 스님의 모습이 보였다. 매일 기사를 통해 접했던 그 모습이었다.
팽목항 좁은 길 양쪽으로 천막이 즐비했다. 여러 종교단체의 천막부터 기업 봉사단, 경기도를 비롯한 지자체의 천막 그리고 진도군과 안산시 자원봉사센터의 천막이 보였다. 진도군 센터를 찾아 일을 배정받고 연두색 빛이 선명한 조끼도 받아 입었다.
내가 배정 받은 일은 화장실 청소였다. 팽목항에 모인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식 화장실부터 샤워실이 여기저기 상당히 많이 준비돼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휴지통을 비우며 살펴본 바로는 화장실이 생각보다 깨끗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애써주신 덕분인 것 같다. 휴지통 비우고 좀 냄새나거나 얼룩이 있는 곳은 락스를 뿌려 닦아냈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는 길에 떨어진 쓰레기들이 있을까 싶어 돌아다녔는데 여러 선생님들이 이미 청소를 하고 계셨다. 한 바퀴 더 둘러본 후 조끼를 반납하자 시간이 오후 6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실내체육관으로 넘어가 다른 일을 하겠다는 요량으로 셔틀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승강장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히 조용했다. 간간이 울리는 목탁소리만 들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후 그 적막은 한 어머니의 목소리로 깨어졌다.
"OO야, 엄마야. 빨리 나와야지. 엄마, 여기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나와. OO야. 우리 딸. 엄마가 정말 많이 사랑해. 우리 빨리 만나자. OO야 사랑해."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묻어나오지 않았다. 밝고 쾌활한, 친구 같은 엄마가 딸을 부르는 목소리 같았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울리는 등대를 뒤로하고 걸어가는 동안 왼쪽으로 가득한 천막들 사이로는 다른 어머니의 통곡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울음소리를 들었다. 해가 지려 하는 하루의 끝자락. 또 하루가 지나가려 하는 그 시간 속에서, 붙잡지 못해 보내야 하는 시간은 깊은 절망이 되어 쌓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