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촌 할매의 발.
빈진향
150차 촛불 문화제,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모였다. 6월 11일 현장에 대한 증언을 듣고 동영상을 함께 보았다. 서로의 마음을 위로하고 전하는 행사들이 이어졌다. 이제 끝이구나, 마지막 농성장이 철거되었을 때 들었던 이 생각이 나의 나약함이었음을 깨달았다.
밀양을 보며 나는 줄곧 '나라면 어떨 것인가?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것인가?'하는 질문을 해 보았다. 이런 모욕과 수치를 견디느니 손해를 입고 억울해도 그냥 피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때로는 이렇게 오랜 세월 싸우는 할매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주변에서나마 밀양을 함께 '살며' '삶의 터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실감하게 된다. 재산을 좀 더 늘리기 위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전셋집을 떠돌아야 하는 도시의 우리와는 다르게 한 곳에서 터 잡고 오래 살아온 삶의 무게는 필시 다를 것이다. 조상 대대로 길게는 수백 년부터, 마침내 정착할 곳을 찾아 수십 년 동안 뿌리내린 삶, 그것은 가볍게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쉽게 파헤쳐지지도 않으리라.
작년 여름, 밀양을 다녀와서 나는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맛난 자두를 맛보았노라고 자랑했다. 아이들은 밀양에서 잘 익은 살구와 보리수를 맛보았고 산딸기를 따 먹는 즐거움을 누렸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의 집회에서 현장을 재현하는 동영상 소리에 무섭다고 울기도 했다.
아홉 살 딸아이는 밀양에 다녀와서 일기장에 '산 위에 송전탑이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나? 송전탑을 초록으로 칠해도 나무가 되지는 않는다'라고 적었다.
이날 희망버스는 갑작스레 만든 자리인데도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타고 왔다. "희망이 무슨 뜻인 줄 아니?"라는 나의 물음에 딸 아이는 "뭔가 될 거라는 생각을 품고 꼭 이루려는 마음"이라고 답했다. 희망 버스에 몸을 실었던 이들이나 밀양의 주민들이나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밀양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굴하지 않는 인간정신이 여기에 있습니다!'라며 밀양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고 시즌 2에 돌입한다고 알렸다. 그동안 밀양에서 벌어진 폭력과 인권 침해, 공동체 파괴를 기록하고 알려내어 그 책임을 묻는 한편 잘못된 법을 개정하고 위험한 핵발전소를 멈추는 운동을 열어나갈 것임을 밝혔다. 바로 전 주말에는 고정, 용회, 위양, 평밭 마을 4곳에서 농성장을 새로 짓고 개소식을 열었다. 앞으로의 촛불집회는 점차 '장터' 형식으로 바꾸어 주민들과 연대자들이 직접 키운 작물을 먹고 나누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작년 5월, 밀양에 처음 공권력이 투입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밀양의 송전탑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지난 1년, 밀양이 내게는 무엇이었을까? 나 역시 내 방식으로 '밀양을 살며' 에너지 문제와 핵발전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고 우리의 삶이 결국 서로 연결돼 있으며 '함께 살기'위한 고리를 맞추어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밀양에서 마주친 여러 인연들, 나는 밀양에서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휴대폰에 녹음해서 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다. 처음에는 경상도 사투리를 잘 몰라서 그랬는데 나중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그들의 역사가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