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의 간절한 기도. 2014년 1월 조계사.
빈진향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그게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하지만 우린 그걸 쏘지도 못했어.(<소년이 온다> 한강, 창비)80년 광주에서, 총을 들었지만, 사람을 향해 겨눌 수 없었던 소년들, 여리디 여린 속살을 숨기지 못한 그들은 살기등등한 군인의 총칼에 무참히 쓰러졌다.
할매들은 연습했던 대로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쇠사슬로 목을 감았다. 그래도 할 수 없어 옷을 벗었다. 나이 많은 할매를, 하얗게 드러난 맨살을 함부로 하지 못하리라는 기대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렇게 거침없는 행정대집행은 처음 보았다고 전했다. 사람의 머리 위에서 지붕을 뜯고 절단기로 쇠줄을 끊고 사지를 들어 올려 농성장의 집기들과 함께 내동댕이쳤다. 경찰들의 눈빛과 태도는 마치 테러범을 소탕하는 것 같았다고, 페이스북 동영상으로 전하는 아비규환의 현장은 정말 그렇게 보였다.
패배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게, '돈'한테는 안 된다고, 한전과 경찰, 정부와 언론이 똘똘 뭉쳐 따돌리고 몰아세우는데 어떡하겠냐고들 하지 않았나. 군홧발 소리와 함께 강제 철거가 시작된 지 삼십 분이 되지 않아 농성장은 사라지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엄마, 왜 울어?"알람 소리에 아이들이 깼다. 느닷없는 엄마의 울음을 아이들에게 설명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르는 슬픔과 분노를 단정한 언어로 표현해낼 수 없었다.
눈물을 훔치고 겨우 아침을 먹여 학교와 유치원에 보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노려보며 지냈다. 네 개의 농성장이 모두 털렸다. 다치고 병원으로 실려간 사람들의 소식도 들려왔다.
'우리 경찰'이 농성장을 찢고 부수며 노인과 수녀님들에게 폭력을 가했다. 원래 행정대집행의 주체는 공무원이고 경찰은 사고에 대비한 보조적인 활동을 하도록 되어 있다는데, 현장의 안전을 위해 함께 왔다는 경찰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허용된 무력으로 사람들을 짓밟고 내동댕이친 것이다.
127번 농성장에는 늘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농성장의 태극기를 볼 때마다 정부와 공기업, 공권력에 맞서면서 태극기를 달아 놓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국가는 이들을 외면했고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지역 이기주의',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불순분자'로 내몰았는데, '이따위 나라에 표할 애국심이 남아 있단 말인가!'하는 냉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80년 광주에서도 국가가 자신을 배신하고 총칼을 겨누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애국가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었다. 돌이켜보면 할매들의 태극기는, 국민으로서의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절박한 호소가 아니었을까? 국가가 국민을 이렇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꾸짖음이 아니었을까?
철거를 마무리한 여경들이 '브이'자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었단다. 사람이 다쳤는데, 사람의 몸과 마음에 피멍이 들게 하고 그 뒤에서 히히덕거리며 사진을 찍다니, 같은 사람으로서 이럴 수 있을까 싶었다. 하긴, 그렇게 악독하게 많은 사람을 죽인 나치 전범도, 이라크에서 포로를 학대한 미군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하지 않나.
경찰들은 그저 자신에게 부여된 일을 만족스럽게 해내었고 그것을 축하하고 싶었을 것이다. '악은 스스로 생각할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생긴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무사유의 결과가 얼마나 잔인한 폭력이 될 수 있는지 밀양에서, 그리고 진도 앞바다에서도 계속 마주하게 된다.
나 역시 감정을 삭히고 차분하게 '생각'을 좀 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나의 분노와 슬픔은 무엇 때문인지, 무엇을 위해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