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이저우 준의회의 터이곳에서 중국식 사회주의가 싹텄다
조창완
중국은 전통 사상의 멀티포트이지만 당대 사상도 철저히 현지화해서 한 곳에 녹이는 특이한 문화적 특성을 갖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중국식 사회주의'다. 중국식 사회주의 태동은 1935년 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준의'(遵義)회의가 기점이다. 이 회의 이전까지 중국 공산당을 이끈 것은 모스크바 중산대학 출신의 보구(博古 1907-1946)과 독일 출신 공산당 고문 리더(李德 본명 오토 브라운 1900-1974)였다.
하지만 대장정의 초반기 중국 현실을 잘 모르는 이들의 지도로 장정군은 괴멸 직전까지 몰리자, 준의회의에서 마오쩌둥이 실권을 잡는다. 이후 마오쩌둥은 전술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중국식 사회주의를 확립해 가고, 당대에 들어서도 중국식 사회주의 모델을 만들어가면서 중국만의 독특한 사회주의를 만들었다. 그 기초는 사회주의이자 공산주의니 만큼 서방의 시점에서 이해되지 않은 점이 많다.
때문에 중국이 세계 양대 헤게모니 국가로 올라선 후 많은 이들은 중국 정치가 가진 비민주성을 비판한다. 군대, 공안이 정보를 장악하고, 일반 시민들의 직선제가 배제된 것에 대한 비판을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적인 강국이 되어가자 중국은 서서히 서방을 향해 당신들의 체제가 절대선인가를 묻기 시작한다.
2014년 5월28일 런민르빠오(人民日報) 1면 칼럼 '서구 민주주의는 왜 점점 그 힘을 잃어가는가'(西式民主爲何日逝失靈)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서구에 대한 예봉을 드러낸다. 이 칼럼은 서구 직선제의 투표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점, 미국 정부가 셧다운(부분 업무 정지)된 점 들을 들면서 서구에게 너무 자만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면서 시장의 자율(보이지 않는 손)과 정부의 역할(보이는 손)을 조화시키는 중국식 사회주의가 우월하다고 자부한다.
중국에서 사상의 융합을 보여주는 가장 경이로웠던 장면은 노자 '도덕경'이 나왔다고 알려진 함곡관에 들렸을 때다. 함곡관의 중심 건물로 노자를 모신 태초궁(太初宮)의 신상 옆에는 공자, 맹자뿐만 아니라 석가나 예수까지 노자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훗날 노자를 모신 이들이 동양사상 뿐만 아니라 서양 사상들도 모두 도와 연결되니 노자가 좋아할 거라는 믿음에서 그렇게 배치한 듯 했지만, 이방인에게는 너무 낯선 풍경이었다.
그리고 이런 중국식 사상의 융합은 그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서구에서 흔히 동양사상이라고 하는 부분에는 이런 도가적 사고가 많다. 도덕경은 도가의 근본 사상이 됐을 뿐만 아니라, 80년대 유네스코의 통계에 따르면 성경 다음으로 번역이 많이 된 저작이 될 만큼 세계 사상계에 큰 영향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