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미술팀이 그린 오정자 마을 회관 벽화 농활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황호숙
워메! 시간이 요렇게 흘러가 버릴 동안 다들 편안히 잘 있었능가 모르겄네. 긍께 시방 우리들이 만나고 헤어진 지가 버얼써 25년에서 10년까정 다양해 불구만, 잉!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오정자로 농활와서 만난 인연만큼 꽃 피워냈으면 월매나 아름드리 꽃나무가 되부렀겄는가. 시방이라도 인사하게 돼서 겁나게 반갑구먼! 살랑살랑 봄바람에 가시나고 머시마고 모다(모두) 바람 나불드끼내는 주황색 나리꽃이 피어나는 6월말만 되면 농활 바람이 가끔 나버린당께. 그려! 내가 농활 와서 농촌에 반해 갖고 살다붕께 더 긍가보네 잉!
오정자마을에 와서 거머리에 헌혈함서 피 뽑고, 고추 따고 논두렁 풀 베다가 비암(뱀) 만나 놀라고 거시기허게 비오는 날에 회문산가서 뒷풀이험서 막걸리잔 기울이던 기억들 싹 다 지워버린 것은 아니제. 트럭 뒤에 타고 노래 부름시롱 읍내 갔다오고 좋아혔잖여.
오정자 마을로 농활 온 학생들 모두 모여라내사 학생들 이름 하나 하나를 모다(모두) 기억하진 못해도 떠오르는 추억은 겁나게 많은디, 그래선가 요맘 때가 되믄 여름 농촌활동 왔던 추억이 참말로 새록새록 솟아나게 많아불거든. 시방도 '오정자 농활대'라는 인터넷 카페가 남아있드만. 사진들을 쳐다봉께 허벌나게 보고싶구만. 혹여 꿈 속에서라도 오정자가 보고 싶들 안하등가. 이 중 두 사람은 작년에랑 왔다 갔는디.
오정자 농활대로 한 번 다같이 모여서 가족 농활 한번 하자고. 제안하는겨! 이장댁이 말이여.1990년대부터 경희대 농활팀, 한양대 농활팀, 또 외국어대학교 농활팀, 그리고 다시 왔던 경희대 농활팀들이 한 오년씩 왔다갔잖여. 첫 경희대 농활팀은 내가 처녀 적에 이 마을 머슴살 때 함께 했었응게 요로코롬 사투리로 인사말을 허는 내가 요상시럽겠지만 나 촌 아줌마 다 됐거든. 시방 나는 순창군의 토박이로 살아가는 겁나게 당당헌 아줌마가 되어 있제.
뜨거운 뙤약볕에서 디지게 일허고 밤마다 했던 아이들반, 청년반, 여성농민반들 다 기억들을 하나 모르겄네, 잉!? 새벽까지 이어졌던 토론들은 또 워찌구. 시방 생각하면 대단했었제. 그때 아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인디 그 애들이 고등학교 교복입은 여학생이 되고 대학생이거나 대학교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여. 함께 늙어가는 거제. 그 때 농활왔던 학생들에게도 아이들이 둘셋 씩 있겠구만.
그 때의 갓난쟁이였던 큰 딸이 이제 24살잉게 경희대 미술팀이 마을회관 벽에 그렸던 벽화의 나이도 고만할 틴디. 새롭게 회관을 지움서 없애버림서 마을 주민 모두가 아쉬워 하며 사진도 찍었었제. 난중에 한 번 그림 그린 사람들이 와서 깔끔허게 다시 칠해놓고 가기도 혔는디 미안혀서 워쩔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