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차로 경주... 여자와의 첫키스 이상이죠"

[덕후열전③] 자동차 수리사 겸 레이싱 드라이버... 변정호 '카고(chago)' 대표

등록 2014.07.02 08:19수정 2014.07.02 14:11
1
원고료로 응원
열심히 하는 사람은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고 합니다. '덕후열전'은 과학, 경제, 예술, 군사, 사회 등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신만의 분야에 빠져있는 마니아들을 찾아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편집자말]
 카레이서 겸 cargo 변정호 대표.
카레이서 겸 cargo 변정호 대표.권우성

"보통 사람들은 레이싱 선수라고 하면 달리는 거 좋아해서 시합 나가는 줄 알아요. 빠르게 달리고 싶은 거라면 그냥 편하게 KTX를 타겠죠(웃음). 서킷에서 고속으로 레이싱을 할 때 느껴지는 상당한 중력감이 좋아요. 그 중력감을 이겨내면서 얼마나 머신(자동차)을 내 몸처럼 자유자재로 컨트롤(조종)하는가. 그 맛이죠."

1위,1위,1위,2위,1위,2위,1위... 약속시간에 맞춰 2층 사무실에 들어서자 선반위에 빼곡히 쌓인 트로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국내 레이싱 대회에서 받아 온 것들이다.

선반 건너편에는 레이싱 게임용 운전석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벽에는 서킷을 질주하는 자동차 사진이 빼곡하다. 창밖으로는 그의 레이싱용 자동차가 공중에 뜬 채로 엔진을 드러내고 있다. 2000cc부문 국내 정상급 드라이버 겸 미케닉(자동차 수리사)인 변정호 '카고(chago)' 대표의 방이다. 

레이싱과 차 수리. 제대로 하려면 남들은 한 가지도 버거워하는 일들을 그는 15년 넘게 병행하고 있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 이제는 생업이 됐다. 한 달 평균 100여 대의 차량이 그의 점포를 거쳐간다.

반복된 허리 수술로 몸 상태가 좋지 않지만 변 대표는 항상 수리점을 지킨다. 자신과 남이 탈 차를 최상의 상태로 준비시키기 위해서다. 기계에 대한 애정과 조종에 대한 열정이 그의 인생을 이렇게 만들었다. 기계가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더니 특유의 너털웃음과 함께 "기계는 거짓말을 전혀 못 하는데 그게 너무 매력적"이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레이싱 첫 경험...여자와의 첫 키스 이상"

카 레이싱이란 두 대 이상의 자동차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경주를 하는 스포츠를 말한다. 골프, 축구와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꼽히며 포장도로를 달리는 온로드 레이싱과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오프로드 레이싱으로 나뉜다. 온로드 레이싱의 최고봉은 세계 3대 스포츠 행사 중 하나인 포뮬러1(F1)이고 오프로드 레이싱 분야에서는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이 가장 유명하다.


국내 첫 레이싱 대회는 지난 1987년 열렸던 진부령-용평 랠리경주 대회다. 이후 26년 동안 다양한 레이싱대회가 열렸지만 아직 대중화는 덜 됐다는 평가다. 대표적인 레이싱 대회로는 'CJ 슈퍼레이스', '코리아 스피드 페스티벌(KSF)', '코리아 스피드레이싱(KSR)'이 있다.
대회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통상 출전자가 차종 선택이 가능한 경주는 자동차 엔진 배기량에 따라 6000cc급과 1600cc 급, 그리고 그 사이 등급으로 나뉜다.

변 대표는 이중 지난해 열린 넥센타이어 코리아 스피드레이싱 3000cc 클래스 종합 우승자다. 직접 개조한 2000cc짜리 아반떼XD 5도어(문이 5개)로 배기량이 더 높은 힘좋은 경쟁차량들을 제끼고 얻어낸 성적이다. 개조한 차량으로 서킷(경주용 도로)을 질주할 때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그는 "덥다"고 했다.


- 올해 나이가 38세인데 레이싱 경력이 18년이다.
"원래는 산악자전거를 탔었다. PC통신 시절에 나우누리 자전거 동호회인 '나우바이크'라는 곳에서 활동했는데 거기에 있었던 기아자동차 연구소 직원들과 친해지면서 스무살부터 레이싱에 발을 담그게 됐다."

- 계기가 독특하다.
"연구소 직원들이 내가 자전거 타는 거 보고 재밌어했다. 경사가 45도가 넘는 길을 남들은 끌고내려가는데 난 자전거 타고내려가니까.(웃음) '간 튜닝'이 되어있는 상태(담력이 크다는 의미)라면서 '너 레이싱 해보지 않을래?' 묻더라. 그렇게 해서 타게 된게 기아 세피아였다."

- 처음 탔을 때 기분이 어땠나.
"일단 신세계다. 개인적으로는 여자와의 첫키스 이상이었다. 속도보다는 온몸에 느껴지는 G포스(중력감)의 묘한 매력이 있다. 그걸 이기면서 차를 조종해야 하니까. 그리고 레이싱카는 운전석만 남기고 단열재 같은 걸 다 떼어내기 때문에 차 내부가 일단 엄청 덥다.

지난 14일 경주에서는 온도가 너무 올라서 차 내부에 불이 나기도 했다. 거기에 슈트입고 헬멧도 쓰니까. 남을 경주에서 이기는 것도 재밌지만 나하고 싸우는 즐거움도 있다."

"어렸을 적 부터 '기계 덕후'...내가 만든 기계 움직이면 희열"

 아반떼 XD 5도어를 개조한 변정호 대표의 경주용 차량.
아반떼 XD 5도어를 개조한 변정호 대표의 경주용 차량.권우성

타고난 담력 덕분에 레이싱 드라이버가 됐지만 변 대표의 어릴적 꿈은 우주비행사였다. 우주에 나가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나는 우주 유영같은 건 관심이 없었고 내가 직접 만든 로켓을 타고 우주로 나가는 걸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만든 기계가 작동하는 걸 보면서 희열을 느끼는 '기계 덕후'다.

이런 기질은 경주용 자동차 운전석에서도 발동했다. 1996년에 카레이싱에 입문한 그는 곧장 자동차 정비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신이 운전하는 차를 직접 손봐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처음엔 국산차로 시작했지만 수입차에도 호기심이 뻗쳤다. 변 대표는 "직접 차를 분해하면서 익히느라 주변 지인들 차 많이 고장냈다"면서 겸연쩍게 웃었다.

그는 현재 서울 대방동에서 '차고(chago)'라는 이름의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레이싱 드라이버로 활동하고 겨울에는 그에 필요한 생활비를 버는데 집중하는 식이다. 돈이나 생활보다는 고장난 기계를 다시 작동시키는 게 주요 관심사라 별다른 영업 요령도 없지만 자신의 차량을 맡겨본 고객들은 차에 또 이상이 생기면 어김없이 그를 찾는다. 특히 수입차 수리 비중이 50%로 높은 편이다.

- 차 수리는 어떻게 하게 됐나?
"두 번 정도 레이싱 대회에 나갔었을 때다. 차 상태에 대해서 미케닉(자동차 수리기사)과 얘기를 하는데 도저히 대화가 안 됐다. 내가 타고싶은대로 타려면 내가 스스로 차를 세팅할 줄 알아야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무작정 카센타 나가서 배웠다. 그리고 199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차를 만지기 시작했다."

- 운전과 기계 고치는 일은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운전을 하다보면 '차가 (내 운전을)더 받쳐주면 좋겠는데'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차체 설정을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고 어느정도 자신만의 답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데 그 과정이 재미있다.

다른 사람들은 레이싱을 빨리 달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운전이란 얼마나 정교하게 자동차라는 기계를 다룰 수 있느냐다. 기계는 거짓말을 못 하기 때문에 내가 잘 하면 잘 되고 못 다루면 (운전이) 안 된다. 그게 최고의 매력이다."

- 원래 만들고 고치고 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나. 
"내가 늦둥이다보니 어렸을 때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집에 있는 오래된 가전제품들을 뜯어보고 하면서 놀곤 했는데 요즘 사람들이야 칭찬 잘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다. 유일하게 칭찬해주는 게 고장난 기계였다. 내가 고치면 움직이니까. 안 되던 기계가 움직이는 게 나한테는 '잘했다', '고맙다'같은 표현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기계에 빠졌다."

- 지금 타고있는 경주용 차량도 직접 만든건가. 어떻게 설정을 바꾼건가.
"그렇다. 현대차에서 나온 아반떼 XD 5도어를 내가 개조했다. 우선 무게를 줄여야 하니까 차체 안에 있는 부속품들 다 떼어내고 깎고 한다. 서스펜션(차의 무게를 지탱하고 노면에서의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이나 다른 기관들도 내 습관에 맞춰서 바꿨다. 창문은 안전성 문제 때문에 유리보다 강도가 300배 강한 폴리카보네이트로 싹 갈아놓은 것이다."

- 운전석에 RPM 계기판만 남아있다. 레이싱할 때 다른 계기는 안 보나.
"아니다. 계기판은 RPM(분당 엔진 회전수)만 바늘식이고 유온, 수온, 유압, 연료압, 속도계 등은 다 디지털식으로 바꿔서 바깥으로 빼놨다.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는 잘 안보인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건 온도와 RPM이다.

온도가 특정수준 이상 올라가면 차가 퍼지기 때문에 주행 관리에 필수적이다. 속도는 타이어 지름과 1, 2, 3, 4, 5단 기어비를 감안하면 RPM으로 대략 계산할 수 있다. 5단에 2900RPM이면 시속 100km 정도다. 코너를 돌 때 슬립(차 미끄러짐) 하지 않으려면 이런 계산을 잘 해야한다(웃음)."

- 2000cc 차가 많다. 왜 그중에 아반떼 XD를 골랐나.
"특별한 이유는 없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 차가 경주용 차량으로 적합하지 않다고들 하더라. 그래서 괜한 반항심에 이걸로 골랐다.(웃음) 나는 캐릭터가 그렇다. 남이 뭐라고 하든 내가 좋고 잘 쓰면 그걸로 된다. 어차피 내가 만든 차에 내가 타는 것 아닌가."

"주민들 자전거 펑크난 것도 수리, 다 기계고 원리는 비슷..."

 경주용 차량 운전석 문에는 변정호 대표 이름과 혈액형이 함께 적혀 있다.
경주용 차량 운전석 문에는 변정호 대표 이름과 혈액형이 함께 적혀 있다.권우성

- 'chago'에서 수입차 수리를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레이싱용 자동차 개조와 관련이 있나.
"그렇지는 않다. 자동차는 다 똑같은 기계다. 수입차는 부품이 좀 희귀할 뿐이지. 벤츠라고 해서 엔진이 없는 것도 아니지않나(웃음). 나는 동네 주민들 자전거 펑크난거나 오토바이도 가지고 오면 봐준다. 다 기계고 원리는 비슷비슷하니까.

수입차를 많이 취급하게 된 건 긍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다른데서는 부품 없으면 '못 한다'고 하는데 나는 손님을 돌려보내기 보다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상식적으로 접근을 해본다.

어떤 사람은 연료탱크에서 연료가 새는 문제로 지프(Jeep)를 가지고 왔는데 워낙 오래된 차라 새 연료통을 구할 수가 없었다. 연료탱크 재질이 ABS수지였는데 연료통을 싹 비운 후 같은 재질의 ABS 수지를 녹여서 고무와 함께 5중으로 덧붙였다. 지금은 잘 타고 다닌다."

- 장사가 잘 될 것 같다.
"글쎄...'장사 머리'가 없는 것 같다. 가끔 브레이크(제동장치) 패드를 갈아달라면서 손님들이 온다. 뜯어보면 패드가 더 사용할 수 있는 상태인데 밟을 때마다 소리가 난다는 거다. 요즘 나오는 금속재 패드는 표면 결정이 고르지 않은 경우에 그럴수가 있다. 말없이 바꿔주고 돈 받으면 되는데 '일시적인 현상이고 쓰다보면 소리가 안 날것'이라고 설명해주고 돌려보낸다. 다만 고쳐야 할 때는 제대로 고쳐준다. 내가 기계를 좋아하고 그걸 고치는데 희열을 느끼는 걸 아는 차 주인들도 어느정도 아는 것 같다. 내게 한 번 맡긴 사람들은 계속 온다."

- 고쳐본 것 중 가장 희귀한 수입차는 뭔가.
"2001년에 일본 브랜드인 닛산에서 출시한 '미크라'라는 차가 있다. 경차 크기인데 가솔린을 연료로 쓰면서 배기량이 1600cc인게 특징이다. 비싸지는 않은데 우리나라에 한 대 있다. 이게 파워오일이 샌다고 왔는데 갈아끼워야 할 순정 호스는 당연히 우리나라에 없었다. 파워오일은 어차피 유압이니까 유압호스를 이용해서 사이즈를 맞춰주는 식으로 수리했다.

비싼차도 많이 온다. 저기(정비소 안쪽을 가리키며) 있는 게 슈퍼차져(엔진 효율을 높여주기 위한 공기압축기)가 달려있는 8기통 캐딜락(6400cc)이다. 타이어가 찢어져서 우리가게에 왔는데 다른 카센터에서는 저 타이어도 분리 못 하는 곳도 많다."

- 여태까지 수리하거나 타면서 인상 깊었던 차가 있으면 좀 소개해달라.
"타본 것 중에 참 잘 만들어진 차라고 느꼈던 건 현대차 엑센트 3도어다. 제동도 깔끔하고 차도 가볍고 잘 나간다. 혼다에서 나온 이케이9(EK9)도 내구성이 좋다. 디자인이 예쁘고 소리가 듣기 좋은차는 미국 포드사의 머스탱 8기통과 이탈리아 람보르기니사의 디아블로다. 람보르기니는 보기는 좋지만 정비하기는 상당히 짜증나는 차다. 미션(엔진 힘을 바퀴로 전달하는 장치)을 수리하려면 엔진까지 통째로 들어내야 한다. 앞으로 사고 싶은 차는 이탈리아 제조사인 피가니의 존다R이다."

- 존다R? 이유가 궁금하다.
"이건 좀 양아치적인 발상인데. '간지('느낌'이라는 뜻의 일본 외래어)'가 난다. 차 외관과 차체가 카본파이버와 티타늄 합금으로 만들어져서 가볍다. 기름 꽉 채워도 1톤 정도. 근데 아마 못 살거다. 가격이 30억 원 정도 한다(웃음)."

"차 좋아하는 젊은 친구에게 GPS 역할 해주고 싶어"

자신의 일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태가 나기 마련이다. 변 대표 역시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 취재 도중 그는 기자에게 '기자 일로 돈 못 벌어도 계속 할 수 있느냐'고 '돌직구' 질문을 날렸다. 그리고는 기자가 변변한 답을 내놓기도 전에 '나는 할 수 있다'고 자답했다. 그만큼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변 대표는 지난 겨울 받았던 허리 수술로 현재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하는 상태다. 딱딱한 레이싱용 시트에 앉아 차를 모는 일은 더더욱 금물이다. 그럼에도 레이싱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허리에 딱딱한 보호대를 찬 채로 올해 4월 열린 코리아 스피드레이싱 경기에 서스펜션과 타이어만 손 본 현대 벨로스터 터보(1600cc)를 끌고 나가 5위를 차지하고 돌아왔다. 200만 원 상당의 출전 비용도 그가 부담했다. 

상위클래스(1~5등) 진입을 목표로 하던 지난 2006년보다 지금의 성적이 더 나은 이유를 묻자 변 대표는 "연습"이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결국 이뤄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지금도 틈만 나면 서킷이 있는 태백으로 달려간다.

변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지도다. 그는 네비게이션(경로 안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스무살 이후 항상 혼자 길을 찾아왔던 오랜 경험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처럼 진짜 자동차를 좋아하는 후배들에게는 "GPS(자동항법장치) 역할을 해주고 싶다"고 털어놨다. 지금껏 몸으로 구르며 익혀온 기계 다루는 기술, 운전하는 기술들을 가르쳐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그때까지 자동차 정비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조금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작업할 때 혼자만 작업복을 안 입는 이유가 있나.
"개인적으로 작업복 입는 걸 안 좋아해서 평상복 차림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허리 수술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더 그렇다."

- 허리는 왜?
"2009년도에 스쿠터 타고 퇴근하다가 택시한테 받혔다. 그때 다친게 작년 12월에 재발을 했다. 철심으로 고정하고 구조물을 넣었는데 뛰질 못한다. 의사 말로는 그건 아마 평생 안될거라고 하더라. 지금 다리를 보면 왼쪽 다리가 더 가늘지 않나. 가끔 신경이 눌려서 왼쪽 허벅지가 감각이 없을 때가 있다."

 "의사는 당장 한 사람을 고치지만 자동차 수리공이 고치는 차 안에 타는 사람은 적어도 한 명이다."
"의사는 당장 한 사람을 고치지만 자동차 수리공이 고치는 차 안에 타는 사람은 적어도 한 명이다."권우성

- 그 몸으로 어떻게 레이싱을 하나.
"올해 4월에는 도저히 경주용 차로는 못 나갈것 같아서 그냥 승용차용으로 쓰던 벨로스터를 서스펜션하고 타이어만 손봐서 끌고갔다. 그리고 2000cc 30여 대랑 겨뤄서 5등을 했다. 나중에 장애가 생길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있는데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지. 허리 수술하고 에피소드가 많았다."

- 또 어떤 일이 있었나.
"카센터는 원래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냥 그렇고 겨울이 제철이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데 수술했다고 편히 입원해있거나 집에 있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카센터 한켠에 타이어로 간이 침대를 만들고 누워서 직원들을 지휘했다. 내가 간이 침대에 누워서 '야 그렇게 만지면 안돼' 하면 와 있던 손님들이 '빵' 터졌다(웃음)."

- 5년 전쯤 인터뷰에서는 자동차 정비사 처우가 상당히 열악하다는 불만을 토로했었다. 여전히 그런가.
"달라진 게 없다. 금전적인 면도 그렇지만 뭔가 정비사들을 '기름쟁이'로 무시하는 풍토가 더 짜증날때가 많다. 그래도 여기 오신 손님들은 내가 많이 교육(?) 시켰다. 한번은 고려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이 오셨는데 자기 차에 무슨 문제 때문에 고장이 난 것 같다면서 진단을 내려갖고 왔다. 그래서 내가 '환자분이 병원 올 때 진단 내려서 선생님을 찾아오면 기분이 어떠십니까' 물었더니 미안하다고 하더라.

간혹 '내가 옛날에 차를 좀 만져봤다'는 식으로 나오는 손님이 계신데 그럴 땐 '연장 빌려드릴테니 직접 고치십시오. 돈은 안 받겠습니다'라고 정중히 말한다."

- 손님한테 너무 세게 나가는 거 아닌가(웃음).
"친한 동생이 하와이에 있다. 하와이 주립대 교수인데 차를 좋아한다. 이 친구가 나랑 가끔 통화하면 '형 하와이 올때 자동차 부속 좀 사갖고 와. 여긴 인건비가 너무 세고 기다리는 것도 함흥차사야'라고 하소연을 한다(웃음). 그만큼 자동차 수리사가 사회적인 대접을 받는다는 거다.

의사는 당장 한 사람을 고치지만 자동차 수리공이 고치는 차는 안에 타는 사람만 적어도 한 명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기 때문에 외국가면 대우가 더 좋다."

장기를 두고 직원 뽑는 사장님

- 다혈질 사장이라 카센터 직원들이 힘들 것 같다.
"나는 직원들 뽑을 때 거치는 순서가 있다. 일단 군대 다녀왔나 보고 그렇다고 하면 바로 면접인데 장기를 둔다."

- 장기는 왜?
"요즘 친구들은 장기 잘 모르는데 아무튼 두다 보면 끈기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보인다. 개중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파헤쳐 나가려고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또 한 가지 조건은 차를 좋아해야 한다."

- 그런 게 척 보면 보이나.
"돈(월급) 안 받고 기자 할 수 있나? 나는 돈 안받고도 할 만큼 이 일(자동차 수리)을 좋아한다. 내가 진짜 기계를 좋아하고 차를 좋아하니까 그런 사람도 보면 찾을 수 있다."

- 직원들에게 잘 해준다는 건가(웃음).
"당연하다(웃음). 그런 친구들을 뽑으면 신경을 많이 쓴다. 20대 초반이면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기 쉬운 나이 아닌가. 그 친구가 자기 위치 파악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어주는 GPS 같은 역할을 하려고 노력한다.

- 쉬는 시간에는 만화책을 보거나 컴퓨터 레이싱을 하나.(사무실 안에 일본 만화 '원피스'의 피규어 10여 개와 플레이스테이션 3용 레이싱게임 '그란투리스모5'가 있었다.)
""게임은 그냥 일하다가 잠깐씩 하는거고 평상시에는 초보자들에게 무료로 운전 가르쳐주거나 서킷에 가서 연습을 하거나 한다. 그림을 좋아하는데 만화책은 잘 안본다. 피규어는 그냥 예뻐서 사다놓은 것이다. 책은 철학책이랑 지도 두 개만 좋아한다."

- 지도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버지가 선생님이신데 어렸을 때 책 읽으라고 하면서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봤더니 무슨 글만 있고 길은 없었다. 그래서 실망했는데 지도는 정말 길이 있더라(웃음). 그래서 좋아한다. 나는 네비게이션 안 쓴다. 지도를 본다."
#덕후열전 #변정호 #미케닉 #레이싱 #자동차 수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집 보냈을 뿐인데... 이런 일 할 줄은 몰랐습니다
  2. 2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쌍방울 김성태에 직접 물은 재판장  "진술 모순"
  3. 3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4. 4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2천만원 깎아줘도..." 아우디의 눈물, 파산위기로 내몰리는 딜러사와 떠나는 직원들
  5. 5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한강 작가를 두고 일어나는 얼굴 화끈거리는 소동
연도별 콘텐츠 보기